우리나라와 중남미 18개국 간 무역 규모는 2002년 108억 달러 수준이었지만, 2021년 기준 한·중남미 무역 규모는 약 511억 달러에 이르렀다. 약 20년 사이 5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우리나라가 중남미 국가에 산업재를 수출하고, 중남미 국가는 우리에게 1차 상품을 수출하는 상호호혜적 무역 관계가 꾸준히 강화돼 온 결과다. 우리의 대중남미 투자도 같은 기간 9배 가량 늘었다. 한국의 중남미 18개국에 대한 투자 규모는 2002년 2억 달러에 불과했지만, 2021년에는 18억 달러를 기록했다. 북미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생산기지 확보와 자원 관련 투자가 이어진 결과다.
중남미는 우리의 자유무역협정(FTA) 네트워크에서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2004년 발효된 우리나라 최초의 FTA인 한·칠레 FTA를 시작으로, 현재 우리나라는 페루, 콜롬비아, 파나마, 코스타리카,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니카라과와 FTA를 맺고 있다. 또한, 에콰도르 및 MERCOSUR와 FTA 협상을 진행 중이며, 최근에는 멕시코와도 협상을 재개하기로 했다. 칠레와는 체결된 FTA를 현대화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처럼 수교 이래 우리나라와 중남미의 경제 협력은 규모와 범위 면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우리와 중남미 개별 국가의 국내 경제 상황과 양측을 둘러싼 세계 경제 및 지정학적 환경의 급변은 한·중남미 협력모델의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대내외 변화를 고려하는 가운데, 상생과 공동번영을 원칙으로 하되 우리 국익 역시 최대화할 수 있는 새로운 협력모델을 구상해야 하는 시점이 도래한 것이다.
먼저, 2010년대 초반부터 관찰된 우리나라의 대중남미 수출 감소세를 반전시킬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대중남미 수출 감소의 원인은 결국 제조업 수출이 부진한 데 있다. 미국, 중국, 일본, 독일 등 제조업 강국과의 경쟁이 심화하고 있는 탓이다. 또한, 역내에서 경제 규모가 큰 국가 대부분은 상품무역 자유화 수준이 높고 FTA도 많이 체결하고 있어 우리 FTA의 관세인하 효과도 제한적이다, 우리나라의 제조업 위주 대중남미 수출이 임계점에 도달한 것이다.
이제 서비스업을 대중남미 수출의 새로운 동력으로 삼아야 할 때다. 코로나19로 인해 서비스 무역구조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으며, 이는 ICT, 사업 서비스, 콘텐츠 등에서 강점을 보이는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중남미에서는 1차, 2차, 3차 산업 모두에서 생산성 제고, 디지털 전환, 글로벌 가치사슬 편입을 위한 서비스수입 수요가 확대되고 있다. 우리가 역내 각국의 서비스수입 수요를 선제적으로 파악해 수출 확대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
둘째, 광물, 식량, 에너지의 보고인 중남미와의 자원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 미·중 경쟁, 가시적인 지정학적 위기의 발생, 신산업의 부상 등으로 자원의 무기화가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남미에는 구리, 아연, 철과 같은 전통적인 광물 뿐 아니라 리튬, 니켈, 코발트 등 신산업에 필수적인 광물이 풍부하게 매장돼 있다. 투자, 기술협력, 정부 간 양해각서 체결 등을 통해 핵심광물의 원활한 수급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협력모델을 찾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식량 분야에서도 공급처 다변화를 위해 중남미와의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국내 수요는 많으나 자급률이 낮은 옥수수와 콩과 같은 주요 곡물의 전 세계 생산량에서 중남미 국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셋째, 세계화 국면에서 세계 경제성장을 견인한 글로벌 가치사슬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가운데, 우리의 핵심 시장인 미국으로의 제조업 수출을 위한 공급망 강화 차원에서 중남미를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최근 미국이 진행하고 있는 자국 주도의 공급망 구축 과정에서 파생되는 도전과제를 북미 시장과 높은 수준으로 편입된 역내 일부 국가를 활용해 일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 각지에서 우리가 일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던 일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바야흐로 격변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세계 정치·경제 환경의 급변으로 우리의 오랜 동반자인 중남미와의 경제협력 역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양측이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60년을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