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25년] 전광우 이사장 "아직 최악 오지 않았다…경각심 갖고 경제위기 대비해야"

입력 2022-10-24 06:00수정 2022-10-24 08:51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中 경제둔화, IMF때와 다르지만
제2 외환위기까지 가진 않을 것
고환율 이제 수출에 도움 안돼
정부, 경기회복 위한 실탄 아껴야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이 20일 서울 강남구 세계경제연구원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외환위기가 발생한 지 25년이 되는 올해, 국내 경제 상황이 심상치 않다.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등 3대 악재가 서민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1997년 IMF 외환위기가 재발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 섞인 시선도 있다.

24일 이투데이는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을 만나 현 경제 상황 진단과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재발할 우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전 이사장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휩쓸던 2008년 초대 금융위원장을 지냈으며, 사실상 현 금융·통화정책 수장들의 멘토로 불린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당시 금융위 부위원장,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금융정책국장이었다.

전 이사장은 외환위기 당시와 현재 국내 경제 상황을 비교하는 질문에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던 시기에는 주변국 상황이 달랐다"며 "중국만 살펴봐도 당시 중국은 고도성장을 하던 시기였고 호황이어서 최대 수출국인 우리나라 입장에선 위기를 조기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는 상황이었다"고 언급했다. 이어 "반면 지금은 중국발 세계경제 위기를 걱정해야 할 정도"라며 "우리나라 입장에서도 우려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아직 최악은 오지 않았다'는 전망이 많다"며 "우리도 높은 위기의식과 경각심을 가지고 철저하게 위기 관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우리 정부의 모습에 대해서는 무리하게 공포심을 자극해서도 안 되지만 너무 위기의식이 없어 보여서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전 이사장은 "정부가 우리 경제의 대외건전성 등 펀더멘털(기초여건)은 양호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데, 과도한 위기감을 조성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저런 입장을 내놓는 것은) 필요하다"면서도 "다만 그것이 진정한 속내가 돼선 안 된다. 위기가 현실화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자세를 갖춰서 균형을 잘 맞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이 20일 서울 강남구 세계경제연구원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그는 현재 고금리 기조에 대해서는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내년 하반기가 되면 좀 나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전 이사장은 "대체로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고용이나 경기 전반에 영향을 주는 데 1년가량 걸린다"며 "우리나라가 올해 상반기 기준금리를 본격적으로 올린 것을 고려하면 내년 하반기 정도엔 그 효과가 누적돼 인플레이션이 잡히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되면 금리 인상 기조도 멈추지 않겠나"라고 밝혔다.

이어 "문제는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리스크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북한의 핵 실험처럼 특별한 리스크가 영향을 끼친다면 그만큼 회복도 느려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금리 인상 기조가 멈추더라도 초저금리 시대는 끝났다고 단언했다. 전 이사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돈이 풀리면서 10년간 초저금리 시대가 이어졌다. 어떻게 보면 호황이라고 볼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거품이 꼈다고도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환경 속에서 부동산이나 가계부채 등이 시한폭탄이 됐다"며 "코로나 이전 초저금리 시대는 끝났다고 봐야 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어느 정도 수준이 될지 예단하기 어렵지만, 과거의 초저금리와 지금 고금리의 중간선에서 균형점을 찾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 적정성에 대해서는 당장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그는 "외환보유액의 적정성을 평가하는 여러 기준에 비추어 볼 때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부족하다고 볼 수 없는 수준"이라며 "한국은행이 국민연금과 10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는 등 외환보유액 관리에 신경 쓰고 있고, 한국투자공사(KIC)도 해외투자를 해놨으니 급하면 좀 팔아서 달러를 국내에 들여올 수도 있는 상황인 만큼 과도하게 걱정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했다.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이 20일 서울 강남구 세계경제연구원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다음은 전 이사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올해는 외환위기 25년이 되는 해다. IMF 외환위기 재발 가능성은?

"현재 경제 상황은 IMF 외환위기와 차이가 있다. IMF 외환위기가 촉발된 배경은 태국 바트 폭락에서 불똥이 튄 것이 우리 대기업 부실 문제로 인화가 돼 폭발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달러 초강세 속에서 엔화나 파운드 등 전 세계 통화가 다 떨어지고 있다. 전반적으로 외환시장이 흔들림이 있는 건 맞는데, 그때처럼 폭발력이 큰 상황이라고 예단하기엔 어렵다.

주변국 상황이 다른점은 우려스럽다. 외환위기 당시엔 중국이 고도성장을 하는 시기였고, 호황이었다. 우리나라 입장에선 중국이 최대 수출국이어서 위기를 조기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됐다. 하지만 지금은 중국발 세계 경제 위기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둔화가 심하게 되고 있고, 중국 부동산 거품 우려도 심화되는 상황이다. 시장에서 엔화는 150엔을 변곡점으로 보고, 위안화는 7.2위안을 변곡점으로 보는데 그게 깨진 상황이다. 우려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제2의 외환위기까지 갈 것이라는 주장은 성급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나 북한 핵 도발 등 지정학적인 문제를 제쳐놓고 보면, 외환보유액 측면이나 대외 순자산이 늘었다든지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제2의 외환위기까지 가진 않을 것으로 본다."

-정부가 우리 경제 펀더멘털 문제없다고 하는데, 너무 경각심 없는 건 아닌가?

"나는 펀더멘털이라는 표현을 잘 안 쓴다. 역사적으로도 펀더멘털이라는 표현을 잘못 쓰는 경우가 있다. 기록을 살펴보니 1997년 9월 미셸 캉드쉬 전 IMF 총재가 우리나라 언론과 인터뷰할 때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에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 인터뷰 이후 두 달 만에 우리나라는 IMF에 구제금융 신청을 했다. 그만큼 펀더멘털은 예단하기 어려운 것이다.

나도 정부에서 일할 때 경제 상황을 언급하며 시장에 과도한 위기감을 조성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했다. 금융당국 입장에서는 어려운 상황을 노출한다는 것에 대해 조심한다고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다만 그것이 진정한 속내가 돼서는 안 된다. 하방리스크가 심각한 상황인데 철저히 대비하고 위기가 현실화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자세는 갖고 있어야 시장도 안심하고 투자자도 신뢰할 수 있다. 무리하게 위기감을 자극하는 얘기는 조심스럽지만, 너무 위기의식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문제가 있으니 균형을 잘 맞춰야 한다."

-환율이 계속 치솟고 있다. 이런 추세가 얼마나 더 이어질 것으로 생각하나?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석좌교수 등 해당 분야 전문가나 분석원들이 내놓은 종합적인 이야기를 들어보면 달러의 초강세는 앞으로 1~2년간 계속될 것 같다. 물론 올해 상반기 급속도로 상승한 것처럼 강도에 차이는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달러 가치가 얼마나 오를지를 언급하기엔 조심스럽지만 킹달러 추세가 조만간 꺽이지는 않을 것 같다. 우선 미 연준이 과감하고 빠르게 금리를 올리고 있어서 달러를 강세로 밀고가는 요소가 된다. 또 하나는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전 세계적인 에너지 위기가 온 시점에 미국은 에너지를 자급하는 얼마 안되는 나라 중에 하나라는 것이다. 유럽이나 일본, 중국 등은 대부분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데, 이에 반해 미국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상대적으로 감내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셈이다. 환율이 상대적인 기준금리 차이나 경제 여건 차이로 형성된다는 점을 볼 떄 달러강세 추세는 당분간 더 갈 것 같다. 우리나라는 여기에 대비해야 한다."

-고환율로 인한 국내 영향은 무엇이 있을까?

"과거에는 우리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수출에 도움이 됐지만, 지금은 그게 안 통한다. 상당 부분 우리나라 주력 제조업들의 생산이 해외에서 이뤄지고 있고, 에너지의 대외 의존도가 90%에 달한다. 수입 가격이 결국 인플레이션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무역수지 악화를 촉발한다. 우리에게 그만큼 부담이 커지는 것이다."

-현재 국내 금융시장에 대한 정책은 제대로 추진되고 있다고 생각하나? 어떻게 평가하는지?

"과거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는 촉발된 원인이 분명하게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복합적인 위기 상황이다. 이럴 때 정부의 대책을 마련하기란 참 어렵다. 물가가 오르니 유동성을 풀 수도 없고, 유동성을 줄이고 긴축 정책을 하자니 경기가 악화된다. 결국 금융당국,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등이 각자의 입장에서 정책을 면밀히 추진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이럴 때일수록 기업의 흑자도산을 막아야 한다. 기본적인 자생력을 갖추고 있는데 금리가 뛰는 영향으로 과도기적 어려움을 겪는 기업을 지원해야 한다. 도저히 회복이 어려운 좀비기업은 옥석을 가리는 일도 금융당국이 해야 할 역할이다. 기재부는 내년 경기가 더 악화될 것을 고려해 재정 실탄을 아껴야 한다. 나중에 경기가 활성화될 때 정부가 본격적인 취약층 지원을 위해서는 재정이 쌓여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정치권에서 포퓰리즘성 정책을 지속해서 추진하는데 '재정건전성을 지킨다'는 원칙으로 실탄을 아껴서 내년 정부의 역할이 필요할 때를 준비해야 한다."

-한은의 추가 기준금리 인상 기조는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는가?

"일단 올해 한은의 추가 기준금리 인상 여부는 11월 3일 미 연준이 자이언트 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단행할지가 관건이다. 미 연준에서 자이언트 스텝을 밟으면 한은도 다음 달 빅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50% 인상)을 고려할 것이다. 앞으로 미 연준은 상당히 높은 강도의 고금리 정책을 내년까지 밀고 갈 가능성이 크다. 그 부분을 면밀히 봐야 한다.

결국 내년 상반기까지는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이어질 것이다. 다만 내년 하반기에는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대체로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면 고용이나 경기 전반에 영향을 주는데 1년 정도 걸린다. 우리나라가 올해 상반기 기준금리를 본격적으로 올린 걸 고려하면 내년 하반기 정도 되면 그 효과가 누적으로 쌓여서 인플레이션이 잡혀가지 않을까 싶다. 문제는 지정학적 리스크처럼 특별한 리스크가 영향을 끼치느냐 여부다. 이런 부분은 예단하기가 어렵다."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을 중심으로 한계기업들의 부실이 내년 초 많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어떻게 보는가?

"이런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라고 본다. 금융시스템을 유지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은행이다. 은행들이 이자 장사해서 수익 많이 낸다고 혼만 낼 게 아니라 충분한 대손충당금 쌓아서 내년에 올 수 있는 충격을 흡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맞다. 3분기에도 은행의 수익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는데, 선제적인 차원에서 대비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차후에 한계기업들 중에서도 좋은 기업은 지원할 수 있는 여력을 은행이 쌓도록 해야 한다."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하다. 이런 부분을 해결할 방안이 없겠나?

"원론적으로 생각할 때 이 문제가 해결되려면 원칙적으로는 가계 소득이 늘어야 한다. 갚을 여력을 만들어 줘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지금 경기가 악화되면서 고용도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소득은 줄어들고 자본시장 여건이 나빠지면서 투자한 것도 손해를 보다 보니 문제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일부는 상환 연장하는 부채 구조조정이 필요할 거고, 아주 어려운 계층에게는 부채를 탕감해줘야 하는 부분도 있다. 공적자금을 고통 분담 차원에서 활용하거나 일부 민간에도 역할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모럴해저드 문제가 발생할텐데, 이런 문제만 일어나지 않도록 바랄 뿐이다. 한계기업 정리 문제 등은 옥석을 잘 가려서 도덕적 해이가 만연되는 부작용을 낳지 않는 선에서 관리를 잘 해야 한다."

-본격적인 고금리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과연 10년 전 초저금리 시대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돈이 많이 풀렸다. 그 이후로 10년 동안 초저금리 시대를 겪으면서 어떻게 보면 호황이라고 볼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거품이 낀 상황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정책 금리부터 시작해서 대폭적인 금리 인상의 시기가 왔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이 비정상의 시대였다. 지속가능하기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 과도한 유동성이 돼 '비정상의 정상화'가 이뤄진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부동산이다. 중국도 부동산 리스크가 끄고 우리도 금리가 올라가고 하면서 부동산이 시한폭탄이 될 수 있지 않나. 그 과정이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이후에 이뤄지는 균형점이라는 것은 코로나 이전 10년 동안의 초저금리 시대는 지나갔다고 봐야 한다. 어느 정도 수준이 될지 예단하기 어렵지만, 과거의 초저금리와 지금 고금리의 중간선에서 균형점을 찾지 않을까 싶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