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글로벌 테마파크 레고랜드가 한국 채권.부동산 시장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1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강원도는 2011년 9월 영국의 멀린엔터테인먼트그룹과 투자합의각서(MOA)를 체결했습니다. 5700억 원을 투자해 중도 유원지 일대에 132만2000㎡규모의 테마파크를 만들기로요.
강원도는 레고랜드를 만들기 위해 특수목적법인(SPC)인 '강원중도개발공사'를 설립하고, 2015년 개장하겠다는 목표를 세웁니다.
그런데 이듬해 첫 삽을 뜨자마자 난관에 부딪칩니다. 대규모 선사시대 유적이 발견된 겁니다. 결국 공사는 지연됐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 팬데믹까지 터지면서 개장은 무기한 연기됐습니다. 그 사이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었죠.
결국 강원도는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강원중도개발공사의 SPC인 아이원제일차를 설립하고 2050억 원 규모의 채권을 발행합니다. 언제 오픈할지 모르는 레고랜드에 투자자가 몰릴 리 없죠. 그래서 강원도는 지급보증을 섭니다. "강원중도개발공사가 못 갚으면, 지자체가 갚아줄게"라며 신용 더한 거죠. 그 채권이 바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입니다.
레고랜드는 우여곡절 끝에 올해 5월 5일 개장했지만, 불과 넉 달 만에 또다시 위기에 봉착합니다.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지난달 28일 법원에 갑자기 '강원중도개발공사의 회생을 신청하겠다'라고 선언한 겁니다. 강원중도개발공사의 자산을 팔아서 빚을 갚고, 부족한 부분은 강원도가 메우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일주일만에 아이원제일차는 ABCP 상환을 못해 부도처리 됩니다.
강원중도개발공사의 자산을 팔아서 빚을 갚고, 부족한 부분은 강원도가 메우겠다는 의미입니다.
채권시장 참여자들은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지자체를 믿고 투자했는데, 돈을 주지 않겠다고 하니까요. 실망감은 불신으로 이어져 채권시장을 더 얼어붙게 만들고 있습니다. 신용등급 'AAA'인 공사채마저 사려는 사람이 없습니다.
부랴부랴 강원도가 입장을 번복해 '예산을 편성해 내년 1월까지 갚겠다'고 약속했지만, 신뢰를 되돌리기엔 역부족입니다.
결국 정부까지 나섰습니다.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50조 원+α(알파)로 확대 운영키로 한 거죠. 정부가 채권을 사들여 막힌 돈줄을 뚫어주는 겁니다.
하지만 위기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습니다. 고금리에 경기 침체까지 겹친 상황에서, 어디까지 혈세로 메워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쏟아지고 있고요.
아무래도 레고랜드로 인해 꽉 막힌 '돈맥경화'를 풀기엔 좀 더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