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이중섭의 ‘황소’. 12년 전 경매시장에 나와 35억 6000만 원에 낙찰 된 국보급 예술품인데요. 미술관에 걸린 이 수십억 원대 작품에 환경운동가들이 똥물을 끼얹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똥물은 아니지만 토마토 수프와 케이크 등을 유명 미술품에 던지는 단체가 있습니다. 영국 환경단체 ‘저스트 스톱 오일(Just Stop Oil)’인데요. 이들의 행위에 대한 비판과 옹호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저스트 스톱 오일’은 올해 초 영국에서 결성됐습니다. 북해 화석연료 관련 생산 허가 중단을 촉구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들이 유명세를 얻기 시작한 것은 5월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 ‘모나리자’를 공격한 이후입니다.
한 활동가가 ‘모나리자’가 담긴 진열장을 파괴하려 한 것이죠. 방탄유리가 깨지지 않자 그는 ‘모나리자’에 케이크를 던지고 전시장에 장미꽃을 뿌렸습니다.
보안요원에게 붙잡혀 “누군가가 지구를 파괴하려 한다. 지구를 생각하라”고 외친 그의 모습은 많은 화제를 낳았습니다.
이들의 행위는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는데요. 지난 7월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또 다른 유명작 ‘최후의 만찬’ 그림 테두리에 접착제로 손바닥을 붙였습니다.
이달 초에는 런던 국립미술관에 있는 반 고흐의 그림 ‘해바라기’에 토마토 수프를 끼얹었는데요. 1200억 원 이상의 가치를 갖는 ‘해바라기’는 유리 액자에 끼워져 있어 손상되지는 않았지만, 활동가들은 재물손괴와 불법 침입 혐의로 체포되었습니다.
이들을 모방한 기후·환경단체들의 시위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영국 환경단체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은 이달 초 호주 멜버른의 빅토리아 국립 미술관에 전시된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 위에 순간접착제를 바른 손을 붙였습니다.
독일 기후환경단체 ‘라스트 제너레이션(Letzte Generation)’도 독일 포츠담 바르베리니 미술관에서 전시된 1600억 원 상당 모네 작품 ‘건초더미’에 으깬 감자를 던졌죠. 예술품을 공격하는 이들의 시위는 모두 환경에 대한 관심 촉구를 목적으로 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최근 ‘저스트 스톱 오일’은 런던에 위치한 지구온난화정책재단(GWPF) 건물 외벽에 주황색 페인트를 뿌리는 시위를 했습니다. ‘권력을 좇는 로비스트들에 의해 취지가 무너졌다’고 비판하는 것이 행위의 목적이었습니다.
리스 트러스 전 영국 총리의 책임이 크다고 언급하기도 했죠. 최근 취임한 리시 수낵 영국 총리에 대해서는 “인류의 이익을 위해 석유와 가스 채굴 허가를 중단하는 게 그의 책임”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비폭력 시민 불복종(non-violent direct action)’이라고 규정합니다. 범죄를 저지르는 정부의 대량살상 프로젝트에 대한 저항이란 겁니다.
반복되는 시위에 영국 당국은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저스트 스톱 오일’의 시민불복종 선언 이후 2주 간 경찰에 체포된 해당 단체 소속 활동가는 554명에 달합니다. 결국 영국 의회는 예술품과 정유 시설 등을 목표로 하는 시위를 제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립니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잘못됐다는 의견과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죠. 시위를 제한하는 의회의 조치에 대해서도 ‘집회의 자유를 박탈할 수 있다’며 반대하는 여론이 존재합니다.
이런 와중에 미국 석유 마케팅회사 ‘게티오일’ 설립자의 손녀 아일린 게티는 이들에게 100만 달러(약 14억2600만 원)를 기부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아일랜드 록스타이자 사회운동가인 밥 겔도프 또한 “이들은 아무도 죽이지 않았지만, 기후변화는 그럴 것”이라며 “(저스트 스톱 오일의 시위 방식이) 영리하다”고 두둔했습니다.
반면 키어 스타머 영국 노동당 대표는 이들을 비판했습니다. 스타머 당 대표는 도로를 가로막고 찰스 3세의 밀랍 인형에 초콜릿 케이크를 던진 ‘저스트 스톱 오일’의 최근 활동을 저격했습니다. 그는 “자신들만이 답을 알고 있는 양 오만하게 행동하지만 (그들은) 답을 모른다”고 꼬집었습니다.
영국에서 벌어진 시위에 대한 한국 네티즌의 생각 또한 각양각색입니다. “폭력적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극단적인 방식이다”, “시위자들이 사용하는 케이크와 페인트를 만드는데도 석유가 사용된다. 시위부터 그만둬야 하는 것 아니냐”며 반대하는 의견이 우세합니다.
반면 “방법이 과격하긴 하지만 기후 위기가 눈앞에 닥치면 무관심했던 과거가 후회될 것이다”, “이렇게 해야 관심을 가지니 어쩔 수 없다”는 말도 나옵니다.
찬반이 대립하는 가운데 “영국과 한국은 문화가 달라서 가능한 일이다”라는 의견도 보입니다. 영국은 기후 운동의 역사가 깊고 시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 이런 시위가 일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죠.
이런 의견은 한국 사회의 반응에 대해 상상해보게 합니다. 환경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의 작품을 더럽히는 시위가 벌어진다면 한국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