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초동 대응이 부실했다는 정황이 속속 밝혀지면서 경찰 책임론이 커지고 있다. 재난안전 컨트롤타워인 행정안전부가 상황을 보고받은 것은 최초 112 신고 시점으로부터 4시간 뒤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더해 참사 발생 후 경찰이 주요 시민단체의 동향을 파악한 문건도 공개돼 사고수습 보다는 정부 책임론을 회피하는 데 급급했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게 됐다.
박종현 행안부 사회재난대응정책관은 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이태원 사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일단 비상 상황이 발생해서 신고가 되면 소방, 경찰, 산림청 등에 행안부 중앙재난안전상황실로 접수가 된다”며 “소방에 최초 신고 된 게 22시 15분,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 접수된 게 22시 48분”이라고 밝혔다.
첫 112 신고 접수가 들어온 시점(오후 6시 34분)보다 4시간을 넘겨 이미 사고가 발생한 뒤 접수를 받은 셈이다.
박 정책관은 “비상상황이 발생해서 신고가 되면 종합상황실로 접수가 된다”며 “행안부 상황실에서 접수를 하고 차관, 장관까지 보고할 사안인지는 상황실장이 판단해서 조치를 취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고가 다 벌어지고 난 뒤 보고 수준으로 접수가 된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즉답을 피했다. 이어진 ‘이런 경우 신고가 경찰, 소방과 유기적으로 접수돼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했다.
경찰이 초동대처를 부실하게 했다는 점은 공개된 112신고 접수 녹취록에서도 나타난다. 참사 당일, 시민들은 경찰 신고로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수차례에 걸쳐 경고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첫 신고자는 ‘해밀톤호텔 옆 골목’을 언급하며 “그 골목을 사람들이 오르고 내려오는데 너무 불안하다. 사람이 내려올 수 없는데 계속 밀려오니까 압사당할 것 같다”, “인파가 너무 많은데 통제 좀 해달라”고 심각한 현장 상황을 전했다.
이 신고를 시작으로 10시 11분까지 접수된 112 신고는 총 11건, 이 녹취록에는 ‘압사’라는 단어는 총 13번 언급됐다.
일부 시민들은 경찰에 구체적인 요구를 하기도 했다. “사람 다 일방통행 할 수 있게 통제 부탁드린다”, “경찰이 통제해서 인구를 좀 뺀 다음에 저기 안으로 들어오게 해야 한다” 등의 내용이다. 한 신고자는 “장난 아니에요. 장난전화 아니에요”라며 상황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11건의 신고 접수에 경찰관은 “알겠습니다”, “출동하겠습니다”라고 답했지만, 경찰이 실제 현장에 출동한 것은 단 4건이었다.
현 정부도 경찰의 늑장 대응을 꼬집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이태원 사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회의’를 주재하고 “경찰은 특별수사본부와 감찰을 통해 철저히 조사하고, 국민들께 투명하고 소상하게 설명해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 전체회의 출석하는 길에 “대단히 엄정한 수사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태원 참사 직후 만들어진 경찰청 내부 문건이 공개되며 논란은 더 거세졌다. 여기에는 진보 진영 시민단체들의 동향을 파악한 내용이 포함됐는데, 현 정부에 대한 정치적인 비판을 우려하고 의식하는 듯한 부분이 상당하다.
이 내부 문건에는 한국여성단체연합과 전국민중행동을 거론하며 “추후 여성가족부 폐지 등 정부의 반여성정책 비판에 활용할 것을 검토 중”, “정부 대응 미비점을 적극 발굴하고 ‘제2의 세월호 참사’로 규정해 정부를 압박한다는 계획”이라고 쓰여 있다.
경찰이 사고 수습에 집중하기 보다는 정치적으로 책임을 면해보려는 내용으로 해석돼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경찰 문건에 언급된 시민단체들은 이날 성명을 내고 강력 규탄했다. 여성연합은 "경찰청은 마치 여성연합 관계자와 접촉해 내부 정보를 알아낸 것처럼 거짓 보고서를 작성했다"며 "여성연합은 경찰과 접촉한 사실이 없으며, 이런 내용도 검토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경찰청은 본 단체가 이번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며 악의적 프레임을 씌웠다"며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