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세탁방지(AML)…회사 명운 가릴 중요 문제”
9월 AML 내부 위험 평가 모델 ‘FARA’ 도입
“트래블 룰 넘어 구속력 있는 세부 가이드 필요해”
가상자산 거래소 플라이빗의 운영사 한국디지털거래소 설기환 상무는 지난 4일 이투데이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자금세탁방지(AML) 제도 도입 초기인 2006년부터 KB국민은행에서 AML 업무를 담당한 설 상무는 지난해 7월 플라이빗에 합류했다.
플라이빗은 올해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에서 실시하는 AML 제도 이행평가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중소 거래소로서는 눈에 띄는 성과다. 성과의 핵심에는 내부 전문 감사 인력을 통한 리스크 관리와 지난 9월 직접 개발한 AML 위험 평가 모델 ‘FARA’(FLYBIT Enterprise-Wide AML Risk Assessment)가 있다. 설기환 상무를 필두로, 씨티은행 출신 박진언 이사가 설계를 맡았다.
설기환 상무는 FARA를 ‘가상자산 업계에 맞춘 실질적이고 능동적인 위험 관리 체계’라고 소개했다. 그는 “가상자산 사업자에게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나 소홀히 할 수 있는 영역들에 포커스를 맞춰 단계별로 위험을 측정하고, 이런 위험 요소들이 내부적으로 마련된 예방 조치들과 상응하는지 점검하는 걸 핵심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11월 현재 플라이빗의 사내 AML 전담 인력은 12명이다. 설 상무는 “인력의 규모도 중요하지만, 인력을 얼마나 집중적으로 투입·관리하느냐가 중요하다”면서 “기존 금융권뿐만 아니라 가상자산 업권에서도 인정하는 전문 인력을 확보하고, 직원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데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설기환 상무는 “플라이빗은 경영진부터 직원까지 AML 분야에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지금 당장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비용이 들지라도, 지금 고생하면 앞으로 상당 기간 이 틀을 갖고 향후 발생할 위험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 (장기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설 상무는 “현재 가상자산 시장이 마치 미국 서부개척 시대 같다”면서 제도적 정비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정 영역의 법만 만들면, 특금법(특정금융정보법)처럼 일부 관련법들이 연계되지 않은 것처럼 또 다른 과제가 될 것”이라면서 “투자자 보호와 시장 육성 등의 내용도 담아 유럽의 미카(MiCA)처럼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법이 나오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설 상무는 트래블 룰을 위한 세부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트래블룰은 가상자산의 자금세탁을 방지하기 위해 송금자의 정보 등을 기록하는 자금 이동 추적시스템을 말하는데, 올해 3월부터 시행됐다.
설 상무는 “상대 거래소에 대한 Due Diligence(의사결정 전 사전 조사 의무) 내용 및 범위, 국내외 거래소와 제휴를 맺고 관련 정보를 연결 제공하는 트래블룰 솔루션 제공사의 책임 범위가 현재 없다”면서 “세부 이행 절차를 올바르게 전달해 줄 수 있는 금융당국과의 소통 채널이 있으면 좋겠다”고 제언했다.
설 상무는 “AML은 거래소 하나가 혼자 독자적으로 돈키호테처럼 한다고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라면서 업계의 공조를 강조했다. 설 상무는 지난달 부산에서 열린 ‘BWB 2022’ 행사에 연사로 나서는 등 꾸준히 가상자산 AML 분야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는 현재 한국자금세탁방지전문가협회장도 맡고 있다.
오랜 기간 은행에 몸담았던 설 상무는 사실 처음에는 가상자산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다. 여러 번 오퍼가 와도 거절하다가 “여기도 전문가를 필요로 하는 곳 아니냐”는 한 마디에 이직을 결심했다. 설 상무는 “거래소의 실상이 간접적으로 봐왔던 편견과 같다면 언제든 나가겠다고 생각했는데, 와서 보니 달랐고 해야 할 일들도 많았다”고 회상했다.
설 상무는 “아직 (가상자산은) 당국도 업계도 신생아이지만, 시간이 가면 당국의 관리 체계나 관리 수준이 좋아질 것”이라면서 “지금의 행보를 보면 조만간 가상 자산 업계 자체가 AML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상당히 성장된 롤모델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