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감사 용역 갈수록 커져…‘빅4’ 경영자문 매출 1조 넘어, 감사 매출 웃돌아
권수영 교수 연구팀, 2017년 논문 “바쁜 기간 내 감사, 품지 저하 우려 커져”
대형 회계법인 회계감사 부서에 근무하는 공인회계사 A 씨는 요즘 로컬 회계법인이나 일반 기업으로의 ‘환승 이직’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 감사 시즌이 아닐 때도 업무가 몰아치면서 피로도가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미 동료 회계사 몇몇은 택스(Tax)나 딜(Deal) 부서로 트랜스퍼(부서 이동)하거나 법인을 떠나 일반 기업에 들어갔다.
회계사는 높은 보수만큼 만성적인 업무 과중에 시달려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이 없는 직업으로 유명하다. 특히 우리나라 기업 대부분은 12월 결산법인이라 1~3월에 기말감사가 몰리는데, 이 기간에는 주 52시간을 훌쩍 넘기며 일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기말감사 시즌을 소위 ‘비지 시즌(busy season)’이라고도 부르는 이유다.
비지 시즌이 끝나면 워라밸을 챙길 수 있는 ‘비시즌’이 찾아온다. 문제는 최근엔 비시즌에도 분·반기 검토보고서 작성이나 내부회계관리제도(K-SOX) 구축 등 비감사 용역으로 업무가 가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시즌에는 감사 업무, 비시즌에는 비감사 용역 업무가 쌓이면서 피로도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A 씨는 “감사 시즌이 끝나면 일정 기간 휴식이 주어지기 때문에 높은 업무 강도와 잦은 야근을 버틸 수 있었는데, 비감사 용역 업무가 늘어나면서 쉴 시간이 사라졌다. 힘들게 들어온 회사를 나가던 사람들이 이제는 이해가 된다”고 토로했다.
회계법인이 비감사 용역을 ‘과할 정도로’ 수주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빅4(삼일·삼정·한영·안진) 회계법인의 경영자문 매출은 1조2662억 원으로 감사 매출(7999억 원)을 크게 웃돌았다.
대형 회계법인 소속 회계사 B 씨는 “감사보다 비감사 용역의 보수가 훨씬 높다. 용역을 수임해 오는 파트너 입장에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면서도 “막상 업무를 수행하는 건 더 연차가 낮은 회계사들이다 보니 인력 이탈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회계사 이탈이 잇따르면서 대형 회계법인들은 매해 대규모 인력 채용에 나서고 있다. 회계업계에 따르면 빅4 회계법인은 올해 1300여 명의 신입 회계사를 선발했다. 3~5년차들이 업무 강도를 못 견디고 퇴사하면 신입사원들이 그 자리를 채우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8년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표준감사시간제 △내부회계관리제도 외부감사 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신 외부감사법이 시행된 이후 업무가 더욱 늘어났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C 회계사는 “신외감법 이후 내부회계관리제도 감사 대상 회사가 많아지면서 업무 시간이 늘어났고, 금융감독원 감리 등 감독도 강화돼 예전보다 지적 사항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과중한 업무는 결국 감사의 품질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권수영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 연구팀은 지난 2017년 ‘바쁜시즌의 기말감사가 감사품질과 감사시간에 미치는 영향’이란 논문을 통해 연구 결과 바쁜 기간에 감사를 수행할 경우 바쁘지 않을 때보다 감사 품질이 하락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연구팀은 “회계법인의 업무가 집중되는 시기에 현장감사를 받는 피감사회사의 경우 감사품질이 하락하게 된다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며 “바쁜시즌에 감사인은 짧은 시간에 많은 현장감사 일정을 소화해야 하고 현장감사 철수 이후에도 누적된 감사업무를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는 현장감사 기간에 충분한 입증감사를 수행하지 못하고, 피로도 누적으로 감사인의 전문가적 주의의무를 떨어뜨려 감사품질을 저하시킨다는 우려와 일치하는 결과”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