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이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주변 건축행위 규제 범위를 기존 500m 이내에서 시도조례에 따라 200m 이내로 완화할 수 있도록 추진한다. 주민 재산권을 보호한다는 취지가 강조되는 가운데, 지자체 개발 방향성에 맞물려 문화재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9일 열린 제2차 규제혁신전략회의에 참석한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이 같은 내용의 규제 완화책을 발표했다.
지자체가 시도조례에 따라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이 위치한 지역을 주거, 상업, 공업지역 등 이미 개발된 지역으로 분류하고 있을 경우, 건축행위 규제를 문화재 외곽 경계로부터 ‘200m 이내’로 적용할 수 있도록 권고하는 내용이다.
이와 관련 이종훈 문화재청 보존정책과장은 "없던 제도를 새롭게 만들어서 규제를 풀어주는 게 아니라, 이미 시도에서 조례로 정할 수 있었던 ‘200m’, ‘500m’를 (상황에 맞게) 지키고 있는지 문화재청이 확인해서 취지에 맞게 조정해 규제 총량을 줄이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규제 완화 발표에 앞선 지난 4일 최 문화재청장, 이종훈 보존정책과장, 박윤정 발굴도제과장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사전 브리핑을 열고 해당 규제 완화에 관한 설명을 이어갔다.
최 청장은 도요지(도기를 굽던 터)로서 사적지에 지정된 전북 부안 유천리를 지목해 “일제강점기에 조사해놓고 전체 지역을 다 사적지로 정해놔 아무 개발행위도 못 하는데 사실 도요지는 유존지역(유적이 있을 것으로 추청되는 지역)으로 가치가 작다”면서 현행 규제의 과도함을 짚었다.
이외에도 부산 북구 구포동 당숲, 경기 광주 분원리 등을 사례로 들어 “일괄적인 지정으로 주민들이 경제적으로 엄청난 손해를 감수해왔다”면서 “문화재가 국민에게 불편한 존재가 되는 것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늦었더라도 (규제 완화 작업을) 시작을 해야 한다”고 필요성을 역설했다.
현재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은 전국 1665개 소다. 문화재청은 올해 중 보존지역이 시도조례에 따른 주거, 상업, 공업지역 등의 용도지역에 부합하는지 정합성을 검토하는 전수조사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2023년 보존지역 범위를 재조정할 계획이다.
서울과 제주는 범위 재조정에서 제외된다. 이 보존정책과장은 제주도의 경우 “세계자연유산 지역이 워낙 넓어 통상 500m로 관리되고 있다”고 부연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런 규제 완화가 자칫 지자체의 개발 방향성과 맞물려 문화재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4일 사전 브리핑에서도 '김포 장릉 사태’과 ‘김해 구산동 고인돌 훼손 사태’처럼 지자체가 문화재 보존 책임을 충분히 다 하지 않아 벌어지는 일이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질문이 나왔다.
최 청장은 "장릉 사태는 유구무언이다. 불찰을 인정한다”면서도 “앞으로는 (장릉과 같은) 세계문화유산을 모니터링하고, (개발행위가 문화재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문화영향평가까지 단계적으로 도입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보존정책과장은 “지자체에 문화재 관련 전공자가 전문직으로 배치되도록 하는 문화재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하려는 중"이라면서 “(지자체가 잘못된 판단을 내릴 경우) 문화재청이 매년 이행 점검에 나설 수 있는 권한을 법제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