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써 중남미 경제 규모 상위 6개국인 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칠레, 페루 모두에서 좌파가 행정부 권력을 쥐게 됐다. 급진좌파 노선을 유지해온 베네수엘라와 니카라과의 권위주의 정부도 국내 야권 및 시민사회의 반발과 국제사회의 잇따른 제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재하다. 2000년대 중남미에서 좌파정권이 연쇄적으로 들어섰던 핑크 타이드 시기가 연상되는 것이 당연하다. 많은 이들이 다시 찾아온 좌파 물결을 제2의 핑크 타이드로 부르는 이유다.
2000년대 제1의 핑크 타이드 시기 잇따라 집권했던 역내 좌파정부는 절반의 성공만을 거뒀다. 가장 대표적인 성과는 사회경제적 불평등 지표가 눈에 띄게 개선된 것이었다. 높은 원자재 가격 덕택으로 안정적인 경제성장이 이루어진 가운데, 재분배를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해 확장적인 경제정책을 시행한 결과였다. 중남미 실용 좌파의 대표 격인 브라질 룰라 전 대통령의 보우사 파밀리아, 급진 좌파의 기수인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부의 미시오네스와 같은 대규모 복지 프로그램의 성과는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충분했다.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역내 좌파정부는 2010년대 들어 다시 차례로 우파에 정권을 내줬다.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며 경기 침체 국면이 시작되었고, 지나치게 확장적인 경제정책 운용으로 인한 재정적자 문제가 불거지며 재분배 정책이 동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부 수장과 고위 공직자가 잇따라 부패 추문에 연루되며 심각한 도덕적 타격을 받자 제1의 좌파 물결은 빠르게 퇴조했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 연이어 집권한 우파 정부가 기대만큼의 성과를 이루지 못하자 중남미 정치 지형은 다시 왼쪽으로 기울게 되었다. 다시 찾아온 좌파 물결이 절반의 성공에 그쳤던 제1의 핑크 타이드와 얼마나 다른 모습을 보여줄지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다. 좌파정부의 성패는 결국 얼마나 신속하게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효과적인 재분배 정책을 내놔야 하고, 필요한 재원 역시 마련해야 한다. 재분배 정책은 필연적으로 비용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재원 조달이 요원하다는 것이다. 현재 중남미 경제는 하방 국면을 맞고 있다. 역내 국가 대부분이 가파르게 금리를 올리고 있으며, 만성적인 재정적자 해결에도 고심하고 있다. 정부 부채 역시 부담이다. 최근 원자재 가격이 높게 유지되긴 했지만, 세계 경제 침체 국면에서 호혜적인 대외여건이 계속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제1의 핑크 타이드 시기 좌파정부가 세계 경제 호황과 원자재 슈퍼 사이클을 등에 업고 앞 다퉈 실시했던 대규모 사회 지출 확대가 이번에는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원자재 슈퍼 사이클은 정부가 신 성장 동력 마련이나 구조개혁 없이도 재분배에 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충당할 수 있게 해줬다.
이번 좌파정부는 이러한 행운을 기대할 수 없다. 새로운 경제성장 동력을 마련하고, 현재의 재분배 정책을 조금이라도 더 진보적인 방향으로 설계하는 수밖에 없다. 지난 8월 출범한 콜롬비아 페트로 정부는 그린에너지 전환, 부자증세, 연금개혁 등을 경제정책의 핵심목표로 설정했다. 룰라는 대선 캠페인에서 미국 바이든 정부의 인프라 법안을 벤치마크한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를 통해 경기를 부양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정책이 사회적 합의 속에서 성과를 내야만 좌파정부가 목표하는 사회경제적 불평등 해소가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
정치 부문에서는 부패 문제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기성 정치인 출신이 아닌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는 칠레나 페루의 좌파정부에 이는 특히 중요하다. 반부패‧반기득권 수사법을 통해 탄생한 정부에서 기성 정치권의 문제로 여겨지는 부패 문제가 불거지는 순간 국정운영 동력이 상실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작년 7월 취임한 페루의 카스티요 대통령은 부패 스캔들을 이유로 이미 두 차례나 탄핵 위기를 맞은 바 있다. 올해 3월 임기를 시작한 칠레의 보리치 대통령도 지난 9월 열린 국민투표에서 개헌안이 부결되며 정권 초기부터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정부를 둘러싼 부패 스캔들이라도 불거지면 이는 곧바로 정권의 위기로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