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권에는 호재…러시아는 타격
미 법무부, 카슈끄지 암살 사건 관련 빈 살만 면책 특권 인정
사우디 에너지장관, 황급히 부인
여전히 OPEC+ 내부서 증산 목소리 커져
OPEC+ 관계자는 WSJ에 “내달 4일 열리는 회의에서 증산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규모는 하루 50만 배럴이다. 증산이 최종 결정되면 서방사회에 호재인 반면 러시아는 타격이 불가피하다.
EU는 OPEC+ 회의 하루 뒤인 12월 5일 러시아산 석유 금수 조치를 발동한다. G7이 추진한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도 시행된다. 러시아가 치솟은 석유 가격에 힘입어 우크라이나 전쟁 자금을 충당하는 구조를 차단하려는 조치이지만, 공급 감소로 글로벌 에너지 가격이 추가 급등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OPEC+의 증산 결정으로 서방은 숨통이 트일 수 있다. 반면 에너지 대란을 부채질하고 싶은 러시아에 타격이다. 러시아는 서방의 가격상한제에 참여하는 국가에 원유를 판매하지 않겠다고 위협했었다.
사우디는 지난달만 해도 산유국을 종용해 2020년 4월 이후 최대 폭인 하루 200만 배럴 감산을 결정했다. 고물가로 발등에 불이 떨어져 7월 사우디까지 날아온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외면하고 러시아 편에 섰다. 사우디 결정은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바이든 대통령에게 정치적 타격을 준 것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당시 백악관은 감산 결정에 대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에 타격을 주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을 흔드는 것이라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사우디의 증산 움직임은 미국 정부의 최근 ‘유화책’에 대한 화답일 가능성이 크다. 최근 바이든 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 관련 소송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면책 특권을 인정했다. 미 법무부는 17일 워싱턴D.C. 소재 연방지방법원에 제출한 문건에서 “피고인 빈 살만은 외국 정부의 현직 수반으로, 국가 원수에게 부여되는 면책 특권이 적용된다는 것이 행정부의 판단”이라고 밝혔다.
면책 특권 인정은 바이든 정부가 빈 살만 왕세자의 입지를 강화시켜주는 것으로, 그동안의 강경 입장에서 상당히 물러선 것이다. 바이든은 빈 살만 왕세자를 국제사회의 ‘왕따’로 만들겠다고 공언해왔다. 사우디 출신의 워싱턴포스트(WP) 칼럼니스트인 카슈끄지 암살 배후에 빈 살만 왕세자가 있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되면서다. 카슈끄지는 2018년 10월 2일 혼인신고를 위해 튀르키예(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을 찾았다가 사우디 정보요원에 의해 살해됐다. 2020년 카슈끄지 약혼녀는 미국 법원에 빈 살만 왕세자 등을 상대로 정신·금전적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최근 유가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OPEC+의 증산 움직임은 이례적으로 평가된다. 유가는 세계 경기둔화와 중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 우려로 하락 압력을 받아왔다.
압둘아지즈 빈 살만 사우디 에너지부 장관은 증산 관련 보도를 부인했다. OPEC+의 증산 검토 소식에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이날 한때 10개월 만에 최저치인 배럴당 75.08달러까지 하락했지만, 압둘아지즈 장관이 이를 부인하면서 낙폭이 줄어 전 거래일 대비 0.44% 하락한 배럴당 79.73달러로 마감했다.
사우디의 부인에도 OPEC+ 내 증산 요구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는 2025년까지 하루 500만 배럴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OPEC의 생산 할당 시스템에 따라 현재 UAE의 하루 최대 생산량은 301만8000배럴이다. 이달 초 이라크도 내달 회의에서 새로운 쿼터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히며 증산 의지를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