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발표…위험성평가 핵심 수단으로 사전 예방체계 확립
정부가 규제·처벌 중심의 산업재해 예방체계를 자율규제 중심으로 전환한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30일 이 같은 방향의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했다. 2021년 0.43‱(퍼밀리아드)인 사고사망만인율(근로자 1만 명당 산재사고 사망자 수)를 202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0.29‱)까지 낮추는 게 목표다.
이 장관은 “최근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시행,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시행 등 처벌을 강화했음에도 사고사망만인율은 8년째 0.4~0.5‱ 수준에 정체돼 있다”며 “안전을 비용의 관점에서만 접근하고 생산의 부가적 요소로 치부하는 그간의 경영 관행은 여전하고, 근로자도 스스로 안전보건 보호 대상으로만 인식하고 있어 자립적인 안전행동, 동료 근로자에 대한 배려 등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보다 먼저 중대재해 감축의 정체기에 직면했던 선진국들은 1970년대 이후 사전 예방에 더욱 중점을 두고 노사의 자발적 노력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했다”며 “그간의 경험에 비추어 다수의 입법을 통한 촘촘한 정부 규제와 처벌만으로는 더 이상 사망사고를 줄일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로드맵의 핵심은 위험성평가를 핵심 수단으로 사전 예방체계를 확립하는 것이다. 정부가 제시하는 하위규범·지침을 토대로 노사가 함께 사업장 특성에 맞는 자체 규범을 마련하고, 평상시에는 위험성평가를 활용해 사업장 내 유해·위험요인을 스스로 발굴·제거하고, 사고 발생 시에는 예방 노력의 적정성을 엄정히 따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한국은 2013년 산업안전보건법에 위험성평가가 도입됐으나, 법·제도 정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대다수 사업장이 위험성평가를 추가 규제로만 인식해 현장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고용부는 제도를 ‘핵심 위험요인’ 발굴‧개선과 ‘재발 방지’ 중심으로 운영하고, 2025년까지 단계적으로 의무화할 계획이다. 내년에는 300인 이상, 2024년에는 50인 이상, 2025년에는 5인 이상 사업장이 대상이다. 중소기업에 대해선 간편한 체크리스트 기법, OPS(One Point Sheet) 방식 등도 개발·보급한다. 산업안전감독 및 법령체계도 위헌성평가 점검으로 전환한다.
중대재해처벌법도 개정한다.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핵심 사항 위주로 처벌요건을 명확히 하고, 상습‧반복, 다수 사망사고 등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을 내린다. 재계와 기획재정부가 요구한 경영책임자 범위 조정은 이번 로드맵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 밖에 중소기업에 안전관리 역량 향상을 집중 지원하고, 건설·제조업에 대해선 스마트 안전기술·장비를 지원한다. 추락·끼임·부딪힘 등 3대 사고유형에 대해선 현장을 중심으로 특별 관리한다.
아울러 근로자의 안전보건 참여를 대폭 확대한다. 산업안전보건법상 근로자 참여의 중심 기구인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설치 대상을 100인 이상에서 30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하고, 근로자의 안전수칙 준수 여부에 따라 포상과 제재가 연계될 수 있도록 표준 안전보건관리규정을 마련·보급하고 취업규칙 등에 반영하도록 지도한다.
산업안전 거버넌스는 산업안전감독관과 안전보건공단, 민간 재해예방기관, 지방자치단체 등 기관 간 원활한 협업이 이뤄질 수 있도록 개편한다. 양질의 종합 기술지도·컨설팅을 제공하는 ‘안전보건 종합 컨설팅 기관’을 양성하고, 사고 발생 시 골든타임 확보를 위한 응급의료 비상 대응체계를 정비한다. 또 지자체·업종별 협회가 지역·업종별 특화 예방사업을 추진할 경우 정부가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이 장관은 “선진국도 자기규율 예방체계로 전환 과정에서 다양한 우려사항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자기규율 예방체계가 중대재해 감축을 위한 가장 효과적 전략이라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함으로써 큰 성과를 거뒀다”며 “우리도 확신을 갖고 흔들림 없이 추진한다면 우리 일터의 안전수준이 획기적으로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