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7일(현지시간) 약 7년 만에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 중동과의 관계 강화를 대내외에 과시했다. 사우디는 융숭한 접대로 시 주석의 기를 살려줬고, 중국은 수십 억 달러에 달하는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양측은 서로를 ‘전략적 동반자’로 칭하며 요란을 떨었지만, 결국 핵심은 에너지다. 유라시아그룹의 중동·북아프리카 연구팀장인 아이함 카멜은 CNN과 인터뷰에서 “사우디와 중국간 논의의 핵심은 에너지 협력”이라며 “서구권에서 에너지 시장 대전환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사우디와 중국이 상호 의존성을 높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고 말했다. 기후변화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이 격변하는 가운데, 사우디와 중국의 불안감이 양국 관계 강화의 불씨가 되고 있다는 의미다.
사우디로서는 시장이 불안하다. 글로벌 주요국들은 탄소 중립 목표에 맞춰 재생에너지 투자를 대폭 늘리고 있다. 2000년대 셰일 붐으로 사우디의 세계 최대 산유국 지위를 흔든 미국은 청정에너지 전환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2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구권 국가들은 사상 초유의 러시아 원유 가격 상한제를 도입해 에너지 시장에 타격을 가했다. 여기에 ‘경쟁국’인 러시아와 이란이 ‘헐값’에 석유를 중국에 내다팔자 조급함은 더 커졌다. 글로벌시큐리티의 갈 루프트 소장은 “사우디는 중국 시장점유율을 잃게 될까봐 우려하고 있다”며 “사우디의 목표는 경쟁국들이 할인 공세를 퍼붓는 상황에서 중국을 충성 고객으로 남겨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2위 경제대국인 중국은 에너지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작년 소비한 에너지 가운데 석유의 72%, 천연가스의 44%가 수입산이었다. 이 가운데 사우디의 비중은 상당하다. 작년 사우디와 중국의 무역 규모는 873억 달러로 2020년 대비 30% 증가했다. 그 중 대부분이 석유였다. 에스와르 프라사드 코넬대학 교수는 “중국 경제가 수입산 석유와 천연가스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다”며 “가격과 규모 측면에서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은 시진핑 정권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라고 말했다.
중국의 속내는 더 있다. 사우디가 지정학적 구도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또 다른 키를 쥐고 있어서다. 바로 석유의 위안화 결제다. 사우디와 중국은 달러 대신 위안화로 석유 대금을 결제하는 방안을 두고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거래가 성사되면 위안화의 글로벌 영향력 확대라는 중국 야망 실현에 성큼 다가서게 된다. 사우디는 미국의 안보 보장을 대가로 석유를 달러로만 거래해왔다. ‘페트로달러’ 시스템은 미국이 달러 패권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중국과 사우디가 공식 인정을 꺼리고 있지만 이미 위안화 거래가 이뤄지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루프트 소장은 “양국은 이게 미국에 얼마나 민감한 이슈인지 잘 알고 있다”며 “미국 달러에 과도하게 노출돼 있는 양국이 교역을 제3자의 통화로 계속할 이유가 없다”고 평가했다.
양국의 ‘불안감’이 서로를 필요로 하지만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사우디-중국의 관계는 깊이와 복잡성 측면에서 사우디-미국의 관계와 비교하기 힘들다”며 “사우디에 중국은 여전히 생소하고 부차적이며 사우디가 세계를 바라보는 기본 인식은 미국에 있다”고 설명했다.
석유의 위안화 거래에 대해서도 카멜 팀장은 “미국과 사우디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지 않는 이상 사우디가 달러를 버리는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낮다”며 “사우디와 중국간 위안화 거래 논의 가능성은 있지만 제한적 규모로, 양자 무역에 국한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프라사드 교수도 “중국, 러시아, 사우디 같은 국가들이 글로벌 무역에서 달러 의존도를 낮추고 싶어하지만 대안이 부재하고, 이들 국가와 시장에 대한 글로벌 투자자들의 신뢰가 낮다는 점에서 달러 패권이 위협받을 가능성은 적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