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2차 가해자 기소’ 오슬기 서울서부지검 형사1부 검사
女 희생자 조롱, 유가족 상처
이례적으로 신속한 수사‧기소
‘음란물 유포’ 4명 재판 넘겨
원인‧책임 규명…재발 방지
참사 관련 법리 검토도 진행
‘신종 전세사기’ 직접 수사
임차인 끌어들여 대출금 가로채
피해자 공범 되는 상황 주의를
“검찰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모욕‧명예훼손‧음란물 유포 사범에 엄정 대응한다는 방침입니다. 유사‧모방 범죄의 확산을 철저하게 차단하고, 가해자들에게 ‘죄에 상응하는 처벌’이 이뤄지도록 하겠습니다.”
오슬기 서울서부지검 형사제1부 검사는 15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검찰청 검사실에서 본지와 만나 “지금까지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향한 2차 피해 사건 4건을 정식 재판 청구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오 검사는 ‘이태원 참사’ 관련 인터넷상 성적 모욕 글을 게시한 피고인들을 기소한 주임 검사 중 한 명이다.
검찰에 따르면 A(26‧유통업) 씨, B(35‧자영업) 씨, C(27‧무직) 씨, D(25‧일용직) 씨 등 피고인 4명은 올해 10월 30일부터 11월 1일까지 인터넷 상에서 이태원 참사 현장‧희생자 사진과 함께 성적으로 모욕하는 음란한 내용의 글을 올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음란물유포)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오 검사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대상 2차 가해 범죄는 인터넷에서 급속히 퍼지거나 유사 범죄가 계속 발생할 우려가 있어 첫 번째 기소의 경우 경찰에서 송치 받은 후 2일 만에 신속히 처리했다”면서 “추모와 애도가 절실한 시기 이태원 참사 여성 희생자들을 조롱하고 음란하게 묘사해 2차 피해를 가하고, 유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고 지적했다.
오 검사는 전파력이 강한 인터넷 공간 특성상 피해 확산을 사전에 차단하고자 신속 수사는 불가피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현재 경찰에서 수사 중인 사건이 다수 남아 있는 상태여서 앞으로도 추가 기소가 이어질 전망이다.
대검찰청은 이태원 참사 발생 직후인 10월 30일 사고 대책본부를 구성했다. 본부장은 황병주 대검 형사부장(검사장)이 맡았다. 서울서부지검은 한석리 지검장을 반장으로 종합대응반을 구성‧운영 중이다. 검찰이 사고 대응을 위해 검사장 두 명을 수사지휘자로 즉각 배치한 일을 두고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오 검사는 “대검과 서울서부지검이 신속 수사, 수사 보완 등에서 ‘원 팀’으로 상호 긴밀히 공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경찰청 특별수사본부로부터 송치된 이후에는 정확한 사고 원인과 책임 규명,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한다는 입장이다. 이미 대검과 서울서부지검은 참사와 관계된 법리 검토‧연구 등에서 협업하고 있다.
아울러 오 검사는 20‧30세대 청년층을 울린 신종 ‘전세 사기’ 사건을 적발하기도 했다. 오 검사는 신종 전세사기 사건을 직접 수사한 주임 검사다. 해당 사건은 대검이 전국 청에서 처분한 형사사건 가운데 10월 우수 수사 사례로 선정했다.
서울서부지검에 의하면 청년 전‧월세 지원 제도를 악용해 조직적으로 허위 임대인‧임차인 등을 모집한 뒤 허위 전세계약서 등을 제출, 시중은행을 속이는 수법으로 33회에 걸쳐 합계 32억 원을 편취한 사건이다. 오 검사는 전세자금 대출사기 일당 14명을 적발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위반(사기) 혐의로 대출 브로커 및 모집책 3명을 구속 기소했다. 허위 임대인‧임차인 등 가담자 11명은 불구속 기소했다.
올 2~3월 이 사건 가담자들이 연루된 다른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제보를 입수한 검찰은 직접 수사에 착수했다. 7~8월께 신병 확보에 들어가 9월 일부 기소에 이어 11월 초 수사를 마무리했다. 가담자 등 나머지 공범들에 대한 수사는 계속하고 있다.
오 검사는 “최근 주거비용이 상승하는 상황에서 무주택 청년의 주거 안정을 위해 한국주택보증공사 보증으로 저금리 전월세 보증금을 대출해주는 청년 전‧월세 지원 제도가 무소득자도 대출이 가능하고, 대출 절차 역시 별도의 신용심사 절차 없이 비대면 서류 심사 위주로 비교적 간이하게 이뤄진다는 점을 노렸다”라고 설명했다.
대출 브로커들은 이 같은 허점을 노려 급전이 필요한 청년들을 임차인으로 끌어 들이고, 원룸 등의 소유자들을 임대인으로 유인해 허위의 전세계약서를 작성하게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허위 전세계약서를 이용해 시중은행에 전세자금 대출을 신청하도록 유도, 은행으로부터 전월세보증금 대출을 받게 했다.
대출 브로커들은 은행에서 임대인에게 지급한 보증금 대출금을 곧바로 돌려받아 다른 공범들에게 분배해주는 방법으로 은행의 대출금을 가로챘다.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 실제 전세계약이 없이 대출을 목적으로 전세계약서만 작성돼서, 임대인은 은행으로부터 보증금을 받자마자 대출 브로커에게 송금하고 대출 브로커는 이를 임대인과 임차인, 각 임대인‧임차인을 모집한 모집책 등에게 나눠줬다.
이 과정에서 대출금 중 절반 이상을 대출 브로커‧모집책 등이 취득하는 경우가 많았다. 임차인 역할을 하는 청년들이 나이가 어리고, 사회 경험이 부족한 점을 악용해 대출 명의인인 임차인에게 대출금을 전혀 지급하지 않거나 약속 보다 적은 액수를 지불했다.
오 검사는 “사회 경험이 부족한 청년들이 쉽게 대출이 된다고 하니 이러한 범행에 가담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수사 과정에서 인터넷상 전세자금 대출을 통해 대출을 해주겠다는 광고 글이 다수 확인됐는데, 이런 광고 글을 보고 정상적인 대출 방법이 아닌 방법으로 대출을 신청하는 경우 이 사건과 같은 범죄에 가담하는 것일 뿐 아니라 대출신청인으로서 이자 납입과 대출금 변제와 같은 민사 책임까지 부담해야 하므로, 청년들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청년들이 본인들도 피해자라고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전세사기에 가담한 공범으로 처벌받는 사안은 별개 문제로 피할 수 없다고 당부했다.
그는 “근래 들어 대출한도가 1억 원으로 상향 조정되면서 피해액이 더 커질 수 있었으나, 초기에 발 빠른 수사로 신종 수법이 확산하지 못하게 막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검찰의 신병 확보 과정에서 주범들이 이렇게 빨리 범죄사실이 들통 날 줄을 전혀 예상하지 못해 미처 도피하기 전에 전원 검거했다고 전했다.
오 검사는 “공인중개사무소, 공인중개사, 중개보조원의 정상 등록 유무를 반드시 확인하고 임대 물건의 시세와 해당 건물의 전월세 비율 등을 따져보면 보증금 반환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다”며 “임대 물건의 등기부등본, 건축물대장, 납세증명서, 전입세대 열람 내역서 등을 꼼꼼히 살피고 전세계약 시 중개대상물 확인 설명서 등도 자세히 확인하면 사기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 때 권리관계 등을 속이고자 다른 시점의 서류를 제시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니, 관련 서류의 발급일자가 계약 당일이 맞는지 확인해야 한다”며 “계약 시에는 소유자 신분증, 대리인 위임장 등 서류의 진위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에 더해 이중계약 위험과 책임을 명시적으로 약정한 뒤, 특약 사항을 기재해도 도움이 된다. 오 검사는 “계약 당일 계약서에 확정일자를 부여받아 전입신고 하고, 주택도시보증공사 등에 보증가입을 하면 전세사기 피해를 예방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오 검사는 “상호 정보의 불균형으로 인해 전세사기 등의 피해가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현장에서 느낀 수사소감을 밝혔다. 법무부와 국토교통부는 주택임대차보호법 일부 개정 법률안과 시행령 개정안을 내년 1월 2일까지 입법예고를 거쳐 내년 초 국회에 주택임대차보호법령 개정안을 제출‧시행할 계획이다.
이르면 내년 초부터 세입자가 전세 계약을 맺기 전에 집주인의 세금 체납 여부와 은행 등이 선순위로 설정한 전월세 보증금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또 세입자의 전입신고 다음 날까지는 집주인이 담보권을 새로 설정할 수 없게 된다.
박일경 기자 ek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