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과 ECB, BOE가 올해 마지막 통화정책 회의에서 줄줄이 금리를 0.5%포인트 인상했다. 앞서 금리를 잇달아 0.75%포인트씩 올리며 긴축 고삐를 바짝 당겼다가 한 템포 쉬어간 것이다. 3월 제로금리를 버리고 금리인상에 착수한 연준은 9개월 만에 4.25~4.5%로 끌어올렸다. ECB는 7월 금리인상에 돌입, 세 번의 빅스텝과 두 번의 자이언트스텝을 밟으며 마이너스(-)0.5%이던 금리를 2.5%까지 인상했다. BOE도 1년 새 9번의 금리인상을 통해 기준금리를 14년래 최고치인 3.5%로 올려놨다.
주요국 금융당국들은 인상 속도를 조절하면서도 시장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는 피해갔다. 이번 결정이 정책 기조 변화를 의미하는 게 아님을 분명히 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방향을 바꾸는 게 아니다”라며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앞서 제롬 파월 연준 의장도 전날 “아직 갈 길이 남았다”며 금리인하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금융당국 수장들이 ‘매파’ 기조를 유지하면서 내년 최종금리 전망치는 줄줄이 높아졌다. 미국 기준금리는 5%를 넘을 가능성이 크고, 영국도 4.5%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경기둔화 조짐에도 금융당국들이 기조 전환을 망설이는 이유는 물가 걱정 때문이다. 최근 인플레이션 지표는 정점설에 힘을 실었지만 불안함을 잠재우지 못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인플레이션이 매우 높게 유지되고 있다”며 “상당히 오래 목표치를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전날 파월 의장도 물가가 계속 더 오를 위험이 있다며 잡혔다는 확신이 들기 전까지 금리인하는 없다고 못 박았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6월 9.1%, 7월 8.5%, 8월 8.3%, 9월 8.2%, 10월 7.7%, 11월 7.1%로 둔화했다. 휘발유를 포함한 원자재 가격 하락이 물가 상승세 둔화를 견인했다. 그러나 근원 CPI를 보면 자신감이 떨어진다. 6월 5.9%에서 9월 6.6%로 오른 근원 CPI는 10월 6.3%, 11월 6.0%로 소폭 둔화했지만 안심하기 이르다. 특히 근원 CPI 주요 항목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근원 CPI의 40%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큰 주거비용은 내년에나 안정을 찾을 것으로 전망된다. 케이스 웨이드 슈로더자산운용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주택시장 침체로 주거비용 상승세가 꺾이는 내년 말쯤 근원 CPI가 4%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근원 CPI를 움직이는 또 다른 핵심 요인 중 하나는 바로 고용이다. 미국은 올해 경기둔화에도 고용시장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임금은 계속 상승 중이고 일자리가 소폭 줄었지만 여전히 구직자보다 두 배가량 많다. 실업청구 건수는 오히려 감소했다. 미 노동부는 지난주(12월 4∼10일)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가 전주보다 2만 건 급감한 21만1000건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미국 근로자들의 일터 복귀는 여전히 더딘 상태다. 이들이 고용시장에 다시 참여할 경우 임금 인상, 비용 증가,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를 이유로 웨이드 이코노미스트는 고용시장 약화, 근원 CPI의 뚜렷한 하향세를 연준의 ‘피벗’ 요건으로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