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부장인 이모(43)씨에게 ‘주식’ 두 글자는 요즘 금기어다. 지난 1~2월 국내 주식에 7000만 원 넘는 돈을 투자했는데, 수천만 원을 잃어서다. 10개가 넘었던 투자 종목 중 다 정리하고 아직 들고 있는 건 삼성전자·삼성SDI·카카오이다. 이씨는 “‘곧 오르겠지’하며 버틴 지 1년이 돼가는데 원금에서 아직 4000만 원 넘게 까먹고 있는 중”이라며 “정신건강에 안 좋아서 요즘은 모바일 주식앱을 삭제한 상태다”고 말했다.
올해도 개인 투자자의 매수세는 거셌다. 한 해 동안 국내 유가증권시장에서 17조 원어치 주식을 사들이며 나홀로 시장을 이끌었지만, 투자 성적은 부진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증권가에선 ‘개미 필패’ 법칙이 다시 확인됐다는 말도 나온다. 기관과 외국인의 성적표도 부진했지만, 개인보다는 낫다.
26일 이투데이가 한국거래소와 한국예탁결제원을 통해 올해 들어 이달 23일까지 유가증권시장 투자자별 순매수 상위 5개 종목의 평균 수익률을 분석한 결과 기관투자자들의 국내 증시 투자 수익률은 개인·외국인보다 소폭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기관투자자 수익률은 마이너스(-) 12.40%로 외국인(-15.47%)이나 개인투자자(-19.68%)에 비해 높았다. 수익률은 각 종목의 순매수액을 순매수 주식 수로 나눠 평균값을 구한 뒤, 이를 지난 23일 종가와 비교해 추정 수익률을 산출했다.
개인 순매수 1위인 삼성전자(-12.39%)를 비롯해, 네이버(-29.46%)와 카카오(-32.36%), 삼성전자우(-11.44%), SK하이닉스(-12.75%) 등이다. 올해 들어 이 종목들의 주가가 약세를 보이자 개인 투자자들이 ‘저가 매수’에 나섰는데, 주가가 추가 하락했다.
기관과 외국인의 수익률은 상대적으로 나았다.
기관 투자자가 가장 많이 산 LG에너지솔루션 투자 수익률은 -7.21%를 기록했다. 기관 투자자들은 순매수 2위 신한지주(수익률 -8.21%)를 비롯해 3위 셀트리온(-7.79%), 5위 한진칼(-42.09%)등에서 모두 마이너스 수익률을 냈다. 그나마 한화솔루션에서 3.29%의 수익률을 기록해 체면치레했다.
외국인 투자자들도 현대글로비스(수익률 0.93%)와 KT&G(14.24%) 두 종목을 제외한 3개 종목에서는 모두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순매수 1위 종목인 삼성SDI의 수익률은 -22.61%였다. 우리금융지주와 SK하이닉스 수익률도 각각 -11.46%, -58.46%로 부진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증권사들은 올해 코스피를 전망하면서 목표지수로 3000선 이상을 잡았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고, 강도 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이 이어지자 증권사들은 하반기 전망에서 코스피 하단을 2050∼2200대로 하향 조정했다.
그런데도 증권사들은 ‘사라’고 외친다. 금융투자협회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3분기 말 기준 과거 1년간 종목 보고서를 발간한 국내외 증권사 47곳 중 국내 증권사 30곳은 ‘매도’ 의견 보고서를 단 한 건도 내지 않았다. CLSA(24.0%), 메릴린치(23.3%), 모건스탠리(17.3%), 골드만삭스(15.6%), 도이치증권(14.3%), JP모건(12.8%), 크레디트스위스(10.3%), 맥쿼리증권(10.0%) 등 외국계 증권사가 매도 의견 보고서를 내놓은 것과 대조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원은 “투자자들은 증권사 의견이 항상 맞지도, 항상 틀리지도 않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최종 주가 전망보다는 왜 이런 결론을 주장하는지, 그 근거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면서 자신의 투자 판단과 비교하는 지표로 삼아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