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오야마학원대 국제정치경제학부 교수
향후 일본은행의 행보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일본 정부가 발행한 국채 중 일본은행이 보유한 비율이 50%를 넘어섰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각국 정부는 국채 발행으로 재원을 조달하여 ‘경제 성장’ 혹은 ‘경기 부양’을 위한 각종 재정 정책을 집행한다. 이에 반하여 각국 중앙은행은 채권시장에서 채권을 매입하여 통화를 공급하거나 반대로 매각함으로써 통화를 흡수하는 공개시장 조작정책 등을 통하여 ‘물가 안정’을 도모한다.
큰 틀에서 보면 경제 성장을 목표로 하는 정부와 물가 안정을 목표로 하는 중앙은행이 견제를 통한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오히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라 불리는 장기 디플레이션(물가 하락)과 경기 침체는 일본 정부가 재정 정책을 위해 국채를 발행하면 일본은행이 그 국채를 매입하여 뒷받침하는 왜곡된 구조를 고착화시켰다.
특히 아베노믹스의 선봉장 역할을 자처한 구로다 총재의 등장 이전만 하더라도 10% 남짓한 수준에 머물던 일본은행 보유 국채 비율이 그의 퇴임을 앞둔 현재 50%를 넘는다는 것은 구로다 총재 재임 기간 얼마나 강력하게 양적·질적 완화를 밀어붙였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며, 이와 동시에 앞으로도 그러한 양적·질적 완화를 지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강한 의구심을 제기하게 한다.
일본은행 보유 국채 비율이 50%를 넘는다는 것은 일본 정부 발행 국채를 시장에서 소화되지 못하는 가격에 일본은행이 사들였다는 의미이고, 이는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뿐 아니라 일본 경제 전체에 대한 신뢰에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과거 그리스가 국가 부채가 그리스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100%를 초과하여 재정 위기를 겪을 당시 이미 일본 정부의 국가 부채는 GDP의 200%를 넘었다. 그 당시 일본은 ‘지구 최후의 안전자산’으로 평가받는 엔화의 발권국이었고, 일본 정부 부채의 90% 이상을 일본 국내 시중은행이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믿음이 팽배했었다.
당시 1달러당 70엔대였던 엔화 환율도 이제는 달러당 150엔을 돌파하기에 이르렀고, 일본 정부 발행 국채의 절반 이상이 일본 민간에서 소화되지 못하고 일본은행이 보유할 정도라면 일본 경제에 대한 믿음도 상당 부분 깨졌다고 보아야 한다. 일본 정부, 일본은행, 그리고 일본 경제 전체에 대한 신뢰가 깨진 상황에서, 앞으로 일본 정부가 확장적 재정정책을 유지하고 일본은행이 국채를 계속 저가에 매입해 주기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올해 초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의 국채 보유 비율은 20%였고, 유럽중앙은행(ECB)도 30% 수준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본은행의 현 상황은 더욱 우려된다.
일본은행은 2016년 양적·질적 완화를 발표할 당시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2%를 달성할 때까지 무제한적 양적 완화를 단행하겠다고 공언하였다. 실제 일본은행은 구로다 총재 재임 기간 무제한적 양적 완화를 단행하였음에도 물가상승률 2% 초과 달성에 실패하였으나, 코로나 사태 이후 전 세계적으로 풀린 유동성과 더불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말미암아 일본의 올해 하반기 물가상승률이 3.7%를 기록했다. 이는 일본은행에 양적·질적 완화의 출구전략을 논의해야 한다는 자연스러운 명분과 당위를 제공한다.
구로다 일본은행 총재는 26일 경제단체연합회 연설에서 다시 한번 금융완화를 지속적이고 원활하게 진행해 나가기 위한 대응이라고 밝히고 출구전략을 향한 첫걸음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이는 3월 말 퇴임을 앞둔 구로다 총재가 퇴임 직전 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 마사지한 발언일 뿐, 출구전략에 대한 논의는 이미 내부적으로 시작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시장에서도 출구전략으로의 선회는 시기의 문제일 뿐이라고 받아들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