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방 벤처기업의 소멸화를 막기 위해 지방전용펀드를 조성하는 등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고 있지만 일부 펀드의 투자규모는 20% 수준에 그쳐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벤처기업 육성과 투자 활성화를 위해 접근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벤처를 키울 대규모 자금을 쏟아붓기보다 인재를 지방으로 끌어들여 벤처 싹을 틔울 수 있게 거주 및 교육 인프라를 조성하는 거시적 관점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9일 중소벤처기업부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초 호남과 충청권에 구축된 '지역 엔젤허브'가 '지역 엔젤투자허브펀드'(이하 허브펀드)를 조성해 투자한 곳은 이날 기준 총 8개 사다. 충청에 3개 사, 호남지역에서 5개 사에 투자를 단행했다. 규모로는 각각 10억 원과 14억5000만 원으로 모두 24억5000만 원이다.
앞서 중기부는 지난해 2월 지역 벤처투자 활성화를 위해 지방전용펀드에 4700억 원을 투입하는 내용이 담긴 '지역 벤처투자 활성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정부는 이 중 지역 엔젤허브를 가진 호남·충청권에서 허브펀드를 조성하는 데에 각각 50억 원씩, 총 100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모태펀드로 60억 원, 지자체와 민간이 40억 원을 출자하는 구조다. 지난 1년간 투자금액이 전체 펀드규모의 20%에 그친 셈이다. 업계에선 투자처 발굴 자체가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고 있다.
학계와 업계는 정부의 이같은 지역벤처 육성 방식에 아쉽다고 입을 모은다. 거주과 교육 등 창업을 하고 뿌리를 내릴 근본적인 여건을 마련하지 않고, 돈만 모으는 데엔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업계는 벤처를 창업하는 인재와 IT업계 개발자들이 지방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을 줄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벤처업계 관계자는 "IT업계 개발자들의 거주 기준은 판교, 제조업의 남방한계선은 반도체 대기업이 위치한 이천"이라며 "벤처업계 기술은 워낙 변화 속도가 빨라 개발자들이 민감하게 움직여야 하는데 이 지리적 한계선 밑으로 내려가면 도태된다는 인식이 있다"고 말했다. 우수 인력들이 지방에서 실력을 키운 뒤 수도권으로 터를 옮기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전성민 가천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현실적으로 벤처업계 개발자들은 어느 정도 규모를 이루고, 정보가 이동하는 효과가 발생해야 하는데 이 단계가 둔화되면서 불안감이 커지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학계에선 일본과 스웨덴의 사례를 눈여겨 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말뫼의 눈물'로 잘 알려진 스웨덴 말뫼지역은 2000년대 초 조선업 불황에 글로벌 조선업체였던 코쿰스가 매각된 뒤 지역경제가 주저앉았다. 당시 코쿰스를 사들인 기업이 바로 현대중공업이다. 전 교수는 "말뫼의 망한 조선소 터엔 친환경 뉴타운이 들어섰고, 크레인이 해체된 자리에 북유럽에서 가장 높은 54층 짜리 초대형 건물을 짓고, 건물 대부분을 창업자와 개발자에 임대주택으로 제공해 인재를 유인했다"며 "현실적으로 쉽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모일 수밖에 없는 정책을 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방 관광지를 연계한 일본의 텔레워크도 예로 꼽힌다. 텔레워크는 우리나라의 워케이션과 같은 의미다. 일본에선 지자체들이 장소를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는 텔레워크의 장점을 활용, 차별화된 정책을 추가해 지방으로 근무영역을 확장하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전 교수는 "특정 지역에서 거주 및 교육 등과 관련한 파격적인 정책을 활용해 시범프로젝트를 시도해 인재를 유입해 벤처 싹을 키워야 할 것"이라며 "여기에는 지방소멸에 대한 지자체의 위기의식과 정부의 정책 지속성도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