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對中 봉쇄’ 속 숄츠의 대외 ‘독자 노선’ 시험대
지난해 11월 5일 폭스바겐(VW)과 바스프(BASF) 등 독일의 대기업 최고경영자 수십 명을 대동하고 중국을 공식 방문한 올라프 숄츠 총리가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중국은 즉각 환영했다. 시진핑 주석의 세 번째 연임이 확정된 직후 중국을 방문한 첫 서방 지도자가 중국을 중시하는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숄츠의 중국 공식 방문과 이 발언은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가 주도하는, 중국을 배제한 자유세계 중심의 공급망 재구성, 나아가 봉쇄에 방점을 둔 대중국 정책과 크게 배치된다.
일부에서는 독일이 실패한 대러시아 정책을 중국에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며 강력하게 비판한다. 내로라하는 독일의 거대 기업들이 10여 년 전부터 세계 최대 중국 시장 투자를 늘려 왔다. 독일은 중국과의 교역이 대만해협에서 분쟁이 발생해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가? 독일의 독자적인 대외정책이 지속될 수 있을까?
“상호의존성 강화가 국익이다”
독일(당시 서독)은 1973년부터 소련의 천연가스를 파이프라인으로 공급받아왔다. 독일이 첨단기술로 파이프라인을 건설한 후 그 대금을 가스로 받아오는 방식이었다. 파이프라인이 건설될 때부터 미국은 반대했다. 냉전시기 적국의 가스를 공급받는다는 것은 적이 이를 무기로 사용해 볼모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반대로 독일은 적국과 이처럼 경제적으로 긴밀하게 얽히면 오히려 적국이 적대적인 정책을 감행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하기 전까지 독일의 논리가 49년간 적중했다. 극소수의 전문가들만이 러시아가 이 정도 규모로 침공하리라 예상했었다.
이런 정책의 바탕에 동방정책이 있다. ‘접촉을 통한 변화’를 모토로 하는 독일의 동방정책은 중도좌파 사회민주당(사민당)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1970년대에 제시하고 실행했다. 적국이라도 대화의 문을 열어두고 대화를 지속하면 미약하나마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정책이다. 1983년 독일에서 중도우파가 집권한 후에도 이 정책은 계승됐다. 16년 넘게 최장수 총리를 지낸 앙겔라 메르켈은 중도우파 기독교민주연합(기민당)의 총재였다. 그는 집권시기(2005~2021) 러시아로부터 가스를 공급받는 두 번째 해저 파이프라인(Nordstream2)을 완공하고 미국과 협의 끝에 미국의 제재도 해제할 수 있었다. 러시아의 침략이 없었더라면 노르트스트림2는 지금쯤 가동되고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독일에서는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동방정책이 외교정책의 기조다.
무역 의존도 80%와 20%의 정책 차이
독일은 흔히 수출 챔피언으로 불린다. 국내총생산(GDP)의 80%가 무역에서 나온다. 우리보다 10%포인트 정도 높다(국제통화기금(IMF) 2020년 통계). 독일의 정밀기계와 화학, 자동차 산업은 경쟁력이 높아 세계 각지에서 ‘메이드 인 저머니’를 자랑하고 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독일은 대외 경제환경에 매우 취약하다. 국제 경제환경이 안정적이어야 수출도 잘 되고 경제가 돌아간다. 반면 미국의 무역 의존도는 20%에 불과하다. 무역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별문제가 없다. 여기에 미국은 셰일혁명으로 가스와 원유 자급국이 됐다. 이런 배경에서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늦추기 위해 대중국 봉쇄정책에 매진해 왔다. 극도로 당파적인 미국에서조차 대중국 봉쇄정책은 초당파적인 합의가 돼있다.
독일의 대러시아 그리고 대중국 정책 비판의 요체는 안보와 경제가 분리 가능한가로 집약된다. 미국이나 많은 서방국가들은 중국과 러시아와 같은 권위주의 정권의 수정주의 세력이 기존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교란하려 하는데 양자 분리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경제가 안보에 종속돼야 한다는 것. 독일 안에서도 일부는 이런 입장이다. 그러나 집권 여당 사민당은 최소한 경제와 안보의 분리가 불가능하다 해도 마냥 이를 수용하는 게 국익이냐고 반문한다. 앞에서 인용한 숄츠 총리의 발언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주권국가로서 국익을 추구하며 자유주의적 국제질서 유지를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은 유럽연합(EU) 27개국 중 최대 경제대국으로 프랑스와 함께 유럽통합을 주도해왔다. 독일의 이런 입장은 EU의 대중국 정책에도 많이 반영돼 있다. EU는 중국을 파트너, 경쟁자, 체제적 라이벌로 규정한다. 기후위기 공동대응 등 세계가 직면한 공동문제에서는 적극 협력해야 하지만 경제에서는 경쟁하고 민주주의 대 비민주주의 구도에서는 체제 경쟁을 벌인다고 인식한다.
“신냉전 아니라 예외적 세계화의 끝”
숄츠 총리는 미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즈’ 1·2월 호에서도 이 점을 강조했다. 그는 현재가 신냉전이 아니라 안정적인 국제질서를 바탕으로 경제적 번영을 가져온 탈냉전 30년간 예외적인 세계화의 끝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세계를 양분하려는 유혹을 피해야 한다”면서 미국과 ‘유럽’이 전 세계의 민주주의 진영을 더 지지하면서 중국과 다른 독재 국가들을 수용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중국의 부상이 중국을 고립시키거나 (서방과의) 협력을 억제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없지만 아시아와 그 너머의 패권에 대한 주장을 정당화하는 것도 아니다”라며 균형적인 입장을 취했다.
숄츠 총리의 이런 대중국 정책에 대해 세 정당으로 구성된 연립정부 안에서도 이견이 드러난다. 중국이나 러시아에 대한 강경정책을 주문해온 녹색당은 총리가 중국 방문 직전에 시진핑에 준 자그마한 선물을 집중 비판했다. 반면에 친기업적인 자유민주당은 총리를 지지했다.
유럽 해운의 관문인 함부르크의 컨테이너 항만 지분 24.9%를 중국 국영 해운사 중국원양해운(COSCO·코스코)이 세 달 전 매입했다. 원래 35% 지분 매입을 시도해 의결권도 행사하려 했지만 지분 규모를 줄여 독일이 승인했다. 미국이라면 이런 결정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국가안보를 이유로 중국 기업의 미국 기업 매수는 거부돼 왔다. 녹색당의 아날레나 베에보크 외무장관은 이 결정 직후 “희망에 근거한 완전한 경제적 의존은 우리를 정치적 협박에 내맡긴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는 또 “우리와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나라에 너무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을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녹색당 주도로 새로운 대중국 정책이 마련 중이다. 각료회의 과정에서 녹색당이 지분 매입 승인을 끝까지 거부해 정책의 최종 결정권한을 보유한 총리가 이 권한을 행사했다. 장관의 정책 자율성이 상당히 보장된 의원내각제 국가 독일에서 총리가 논란이 큰 정책에 대해 최종 결정권을 행사한 경우는 흔치 않다. 그만큼 지분 매입 승인이 연립정부 안에서 큰 논쟁거리였다.
“중국에게는 VW이 필요하지 않지만 우리에겐 중국이 필요하다”
“중국에게는 VW이 필요하지 않지만 우리에겐 중국이 필요하다.” 올리버 블루메 폭스바겐 회장은 중국 시장의 중요성을 이처럼 간결하게 표현했다. VW 수익의 절반이 중국에서 나오며 생산되는 자동차의 40%가 중국에서 판매된다. 세계 최대의 다국적 화학기업 바스프도 마찬가지다. 바스프는 지난해 9월 중국 광둥성 잔장에 총 100억 유로(약 14조 원)를 투자해 통합 생산기지 건설을 시작했다. 2030년에 공장이 완공되면 바스프 본사인 독일의 루트비히하펜과 벨기에 안트베르펜 기지에 이어 세계 3대 통합 생산기지가 된다. 거대 식료품 체인점 알디는 지난해 7월 말 상하이에 매장을 오픈했고 앞으로 수백 개 매장을 중국에 연다.
2021년까지 중국은 6년 계속해서 독일의 최대 교역국이었고 상품 교역의 9.5%를 차지했다. 컨설팅업체 로디엄그룹에 따르면 2018~2021년 중국에 들어온 외국인직접투자(FDI)의 43%를 독일이 차지했다(그래프 참조). 직전 10년간보다 9%포인트 증가했다. 폭스바겐·BMW·다임러·바스프 등 독일의 4대 기업이 유럽 전체 중국 직접투자 규모의 34%를 차지했다.
미국 행정부는 시진핑의 집권이 끝나는 2032년 이전에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가능성이 점차 높아진다고 전망한다. 그러기에 중국의 첨단무기 생산에 전용될 수 있는 첨단 반도체와 반도체 장비의 중국 수출을 금지하는 고강도 정책을 실행 중이다.
독일과 우리의 국제정치적 위상과 지정학적 위치는 크게 다르다. 그럼에도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독자적인 대외정책을 실행하고자 하는 독일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팟캐스트 ‘안쌤의 유로톡’ 제작·진행자, ‘셜록 홈즈 다시 읽기’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