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이 적정 분양가 산정을 두고 딜레마에 빠지고 있다. 원자잿값이 크게 오르면서 공사비가 오를 수밖에 없지만, 시장 하락기인 만큼 고분양가 논란이 부는 단지에서는 미분양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공사비 산정을 두고 조합과 시공사 간 잡음이 커지는 현장도 늘고 있다.
12일 분양업계에 따르면 고분양가 논란이 일고 있는 지역에서 흥행 참패가 이어지고 있다. 경기 안양시 동안구 호계동 ‘평촌 센텀 퍼스트’는 10일 1순위 청약 결과 전체 1150가구 모집에 257명이 접수하면서 평균 경쟁률이 0.22대 1에 그쳤다. 2순위까지 기간을 늘려도 350명에 불과해 전체 8개 타입 중 7개 타입에서 마감에 실패했다.
이 단지는 최근 규제 완화 이후 수도권에서 처음으로 분양하는 단지라 주목받았다. 그러나 분양가가 주변 시세 대비 높은 가격에 책정됐다는 논란이 불거지면서 성적이 부진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 단지 전용 59㎡형은 분양가가 7억4400만~8억300만 원으로 책정됐다. 인근에 있는 신축급 단지 ‘평촌어바인퍼스트’ 같은 평형 최저 호가가 6억 대인 것과 비교하면 크게 높은 수준이다.
시공사 측은 책정된 분양가가 합리적으로 결정된 사항이라고 했다. DL이앤씨 관계자는 “분양가는 시공사 단독으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 공사 원가 등 조합과 협의해서 결정한다”며 “특히 최근 원자잿값이 크게 오르면서 공사비를 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 원자잿값 상승이 여전히 지속하고 있다. 최근 레미콘업계에 따르면 시멘트 값 상승에 따라 수도권 레미콘 가격을 10.4% 인상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수도권 레미콘 가격은 현행 1㎥당 8만300원에서 8만8700원으로 오르게 됐다. 정부 역시 지난해 이례적으로 기본형 건축비를 세 차례 연속(3월 2.64%, 7월 1.53%, 9월 2.53%) 인상하기도 했다.
이처럼 건설사로서는 공사비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조합(시행사) 입장에서는 지금 같은 분양시장 하락 시기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공사비 증액 문제를 두고 갈등을 겪는 현장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실제로 삼성물산은 최근 8월 입주를 앞둔 서울 서초구 ‘래미안 원베일리’ 조합 측에 공사기한 연장 및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삼성물산과 조합 측 간 갈등은 지난해 8월부터 시작했다. 삼성물산은 공사비를 기존 1조1277억 원에서 1500억 원 증액한 1조2777억 원으로 올릴 것을 요청한 상태다.
서울 강서구 방화동 방화6구역 역시 공사비 증액 문제를 두고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HDC현산)과 접점을 찾지 못한 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HDC현산은 지난달 최초 책정 공사비 대비 34.8% 증액한 공사비를 요구했지만, 조합 측은 확정 공사비 계약을 근거로 반대하고 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원자잿값 상승으로 공사비는 올려야 하는 상황이지만, 미분양 사태도 심해지고 있어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며 “분양 일정을 쉽게 짜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