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가족돌봄청년 규모 약 18~29만 명 추산
서울시 “정확한 실태 조사 후 지원 계획 마련”
아픈 부모를 돌보면서 생계를 책임지고 학업 부담까지 겪는 ‘가족돌봄청년(영케어러)’이 일반 청년들과 비교하면 최대 10배가량의 시간을 ‘돈 벌이’에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다 보니 가족돌봄청년들은 하루 대부분을 일과 돌봄 및 가사노동으로 보내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문가들은 가족돌봄청년을 선제적으로 발굴해 생계·학업·심리 등 다방면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17일 서울연구원은 '가족돌봄청년의 일상생활에 관한 질적 사례연구'를 통해 가족돌봄청년 5명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를 발표했다.
서울시 조례에 따르면 가족돌봄청년은 ‘장애, 정신 및 신체의 질병 등의 문제를 가진 가족을 돌보고 있는 14~34세의 사람’이다. 이들은 대개 어린 나이에 아픈 부모를 돌보고 생계 책임을 지며 학업 부담까지 떠안은 청년들을 의미한다. 과거 ‘소년소녀가장’으로 부르며 일시적 관심의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떠안아야 할 가족 돌봄 대상이다.
가족돌봄청년들은 하루에 5~12시간 정도를 일과 아르바이트에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같은 연령대인 청년과 비교하면 약 1.5~10배가량 높은 수치다.
통계청의 2019년 생활시간 조사에 따르면 19세 이상 성인은 평균 3시간 32분, 대학생의 경우 1시간 31분을 일과 구직활동에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비교해보면 가족돌봄청년은 성인기준 1.5~4배, 대학생 기준 5~10배 이상 경제적인 일을 일반 청년들보다 더 감당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가족돌봄청년들은 간병, 가사, 보육에도 하루에 4~7시간 정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면 등의 필수 시간을 제외하면 가족돌봄청년들은 24시간 중 약 80~95% 이상 일과 돌봄 및 가사 노동으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연구진은 가족돌봄청년이 경제적인 부담과 더불어 돌봄을 책임지면서 학업을 중단하거나 시작하지 못하는 등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봤다. 이어 가족돌봄청년들이 겪는 심리적인 고통 또한 이어지리라 판단했다.
부모의 이혼으로 할머니 밑에서 자란 B 씨(29·여성)는 “1년간 할머니의 간병을 전담하면서 학업과 일상 활동을 전반적으로 접을 수밖에 없었다”라며 “당시 청년으로서는 뒤처졌던 시간”이라고 회상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가족돌봄청년과 관련한 통계는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단순히 국내 가족돌봄청년은 18만4000여 명에서 29만5000여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를 비롯한 각 지자체에서도 가족돌봄청년에 대한 정확한 규모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2월 ‘가족돌봄청년 지원대책 수립방안’을 발표하며 생계지원과 돌봄 지원, 행정·법률 업무 등으로 관련 정책을 세분화했다.
서울시도 가족돌봄청년의 현황을 파악하고 체계적인 지원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가족돌봄청년 실태조사’를 이달 말까지 실시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가족돌봄청년 실태조사를 통해 그 결과를 시범사업에 반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 서대문구에서는 지난해 전국 최초로 '영 케어러 지원 종합계획'을 수립한 바 있다. 이를 통해서 44명의 가족돌봄청년들이 돌봄 SOS 서비스, 마음돌봄키트, 교육비 등을 지원받았다.
보고서는 가족돌봄청년들의 자립을 위해서는 경제적 지원과 더불어 진로와 학업 준비도 병행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실제로 해외 사례를 보면 영국은 가족돌봄청년에게 돌봄 수당 등을 통해 개인별로 처한 상황과 환경에 따른 추가 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호주에서도 학비 보조프로그램을 통해 기준에 따라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다.
연구진은 “가족돌봄청년의 돌봄 상황을 파악해 기본 돌봄 수당과 학비 보조를 중심축으로 둬야 한다”며 “또 돌봄 대상자의 질병 수준이나 돌봄자 인원수, 돌봄 시간 정도를 설계해 구간별 수당 체계를 설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가족돌봄청년이 홀로 간병을 전담해야 하는 경우를 고려해 돌봄의 공백을 메우는 방법과 기존 돌봄 서비스를 연계할 체계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