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외신기자클럽 모두말씀

입력 2023-01-18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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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국과 비교한 한국의 통화정책 운용 여건

(조현호 기자 hyunho@)

안녕하십니까. 초대해주신 ‘서울외신기자클럽’ 최재웅(아사히신문 서울지국 외교안보 팀장) 회장님과 관계자 여러분, 그리고 참석해주신 언론인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저는 한국의 통화정책 운용 여건을 주요국과 비교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세 가지 공통점

지난해를 되돌아보면 한국과 주요국의 통화정책 운용 여건에 공통점도 있었고 차이점도 있었습니다. 우선 공통점으로는 1) 예상치 못한 높은 인플레이션, 2) 달러화의 강세, 3) 높은 레버리지 수준 하에서의 통화긴축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먼저 물가의 경우 금융위기(GFC) 이후의 저물가 기조가 끝나고 글로벌 고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로 수요가 빠르게 회복되었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글로벌 공급망 차질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제 원자재가격이 급등하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크게 높아졌습니다.

이로 인해 미국과 유로지역의 지난 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수십년만의 최고치인 연 8%대 수준을 나타냈습니다.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5.1%로 외환위기(1998년 7.5%)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였습니다.

이러한 높은 인플레이션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미 연준이 금리를 빠르게 인상함에 따라 달러화 강세가 두드러졌습니다.

10월 이후 달러화 강세가 반전되었지만 미 달러화 지수(DXY)가 지난해 1~10월중 16.6% 절상되는 동안 원화를 비롯한 주요국 통화가치는 큰 폭 하락하였습니다.

특히 한국과 같은 에너지 수입국에서는 유가가 크게 오른 상황에서 환율까지 급등하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더 가중되었습니다. 통상 과거에는 달러 가치와 유가 간에 역의 관계가 나타났는데, 지난해에는 두 변수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 한국경제의 어려움도 더 커졌습니다.

끝으로 지난 십여년간의 저금리 환경에서 나라마다 부채의 종류와 구조는 다르지만 전 세계적으로 레버리지 수준이 크게 높아졌으며, 이에 글로벌 통화 긴축이 맞물리면서 금융안정 면에서의 취약성이 커졌습니다.

그 결과 다수의 신흥국이 IMF의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신청하고 있으며, 저금리 기조하에서 크게 상승했던 주택가격이 10% 넘게 조정된 국가도 다수입니다.

세 가지 차이점

이러한 공통점 내에서도 한국만의 특수성도 나타났습니다.

우선, 전세계적으로 고물가는 공통적인 현상이었지만 높은 인플레이션을 초래한 요인은 국가별로 달랐습니다.

지난해 유로지역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가격 급등에 따른 공급측 요인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더 컸던 반면, 미국의 경우 팬데믹 회복과정에서 늘어난 재정지출, 노동시장의 구조 변화 등으로 물가압력이 더 크게 나타났습니다. 한국의 경우 수요, 공급 요인의 기여도가 양 지역의 중간 정도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물가충격 요인의 차이는 향후 에너지가격 하락 시 각국의 인플레이션 조정 양상의 차별화로 이어질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라 각국의 통화정책 대응도 달라질 것입니다.

외환시장의 경우 지난해 8월까지 원화는 달러인덱스(DXY) 변화폭과 유사한 정도로 절하되었던 반면, 지난해 8월 중순부터 10월말까지는 달러화 강세 속도보다 더 빠르게 절하되었습니다. 이는 중국의 경기둔화 및 일본 엔화가치의 가팔라진 절하 등에 주로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동 기간 중 한국의 정책당국은 환율의 쏠림현상이 가속되자 그 상승속도를 억제함으로써 외환파생거래 관련 마진 콜 확대가 다시 환율 상승으로 이어지는 순환고리(feedback loop)를 차단하기 위해 외환시장에 불가피하게 개입하였습니다.

레버리지와 관련해서는 상대적으로 보면, 한국의 기업, 정부 및 대외 부문 부채는 현재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닌데 반해 가계부채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비중은 105%로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에 해당하며, 저금리 환경 및 팬데믹 하에서 빠르게 증가하였습니다.

단기적으로 한국의 가계부채 문제가 금융시스템 불안을 초래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한국의 은행들은 자본이 충분한 데다, 가계여신의 상당 부분이 엄격한 DTI, LTV 규제를 받는 부동산을 담보로 하고 있으며, 이들 자산의 건전성은 상당히 높은 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가계부채 구조는 통화정책 결정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단기부채 및 변동금리 비중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습니다. 만기가 1년 이하인 가계부채 비중이 전체의 1/3 수준이며, 가계부채의 80% 정도가 변동금리 대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에 통화 긴축 및 주택가격 하락에 대한 소비지출 및 경기의 민감도가 더 크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금리 인상 효과의 누적으로 인플레이션과 경기 간에 상충 관계(trade-off)가 커질 수 있으며, 이는 통화정책 결정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습니다.

(조현호 기자 hyunho@)
향후 통화정책 운영에 대한 시사점

이러한 공통점과 차이점이 향후 통화정책 운영에 시사하는 점을 보면, 올해는 국가별로 통화정책이 차별화되는 가운데, 통화정책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올해 물가 흐름을 예상해보면,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인플레이션(core inflation)은 주요국과 마찬가지로 경기하방압력이 커지면서 둔화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headline inflation 둔화 흐름은 지난해 국제유가 급등의 영향이 CPI에 뒤늦게 반영(pass-through)되면서 주요국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난해 유로지역의 전기·가스요금 등 에너지요금 상승률이 40%를 상회한 반면 한국에서는 13%에 그쳤습니다. 이에 따라 올해 유가 수준이 작년보다 낮아지더라도 한국의 경우 그간 누적된 비용인상압력이 금년중 전기·가스요금 등에 뒤늦게 반영되면서 headline inflation의 둔화 속도가 주요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딜 수 있습니다. 향후 통화정책 운영 및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이러한 차이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한편 금융안정과 관련한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도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부채문제로 한국의 금융시스템에 단기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없어 보이지만, 부동산 관련 부문에서 어려움이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볼 때, 지난해에는 5% 이상의 고물가 상황이 지속되면서 물가에 중점을 두었다면, 올해는 물가에 중점을 두면서도, 경기 및 금융안정과의 trade-off도 면밀하게 고려해야 하는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은행은 이러한 정책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앞으로 통화정책을 보다 정교하게 운용해 나갈 것이며, 시장과의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도 적극 노력하겠습니다.

이상으로 모두발언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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