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아랍에미리트(UAE) 대통령이 공동성명을 채택한 뒤 이렇게 밝혔다. 원전 제3국 공동진출을 공식화하자마자 대상국을 특정한 데다 영국은 과거 협의에 실패했던 국가라 이목을 끌었다. 물밑협의로 성과를 일궈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인지 주목된다.
한국전력공사는 영국을 원전 수주 대상국 중 하나로 꼽기는 했지만, 대규모 건설계획이 발표된 체코와 폴란드 등에 집중해온 것으로 알려져 왔다. 과거 2017년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 수주전 당시 한전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기까지 했지만 최종 협상은 실패로 끝났다.
물론 무어사이드 원전 수주 실패 이후에도 영국을 상대로 한 민관의 직간접적인 접촉은 계속돼왔다.
지난해 5월 한전은 크와시 쿠르텡 영국 산업에너지부 장관과 비공개로 만나 신규 원전 건설을 논의했다. 영국이 2050년까지 최대 8기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추진키로 하면서다.
민간에선 현대건설이 제휴 미국 기업인 홀텍 인터내셔널이 영국 정부와 소형모듈형원자로(SMR) 건설 MOU를 맺었고, 삼성물산·두산에너빌리티·GS에너지가 지분투자 한 미국 기업 뉴스케일파워은 SMR 건설과 관련해 영국 정부와 협의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물밑협의가 있었을 뿐 이렇다 할 진척은 없는 상황이다. 정부 관계자는 “영국 원전 수출은 계속 논의의 끈을 이어가고 있을 뿐, 변화가 있진 않다”고 했고, 한전 관계자는 “양국 정부 간 실무진에서 접촉하는 단계라 사업모델로 확정되거나 구체화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렇다 보니 대통령실에서도 공개적으로 영국을 짚은 것은 강한 의지의 표현일 것이란 반응이 나온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영국 원전은 정해진 게 없는 걸로 안다”며 “최상목 경제수석의 코로나19 확진으로 순방에 이관섭 국정기획수석이 대신 갔는데, 이 수석이 산업부 차관과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을 역임했으니 열의가 남다르지 않았겠나”라고 말했다.
다만 승산도 없는 일에 의지만 내세운 건 아닐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무어사이드 원전 수주가 좌초됐던 큰 이유가 영국 정부의 건설자금 전액 마련 요구인데, UAE 금융조달을 통해 해소할 수 있고 영국이 최대 8기 신규 원전을 짓는다는 명확한 계획을 세웠다는 점에서다.
한전 관계자는 "영국이 따로 개입하지 않은 상태로 UAE가 돈을 조달하고 한국의 기술로 짓는 개념이지 않겠나"라고 추측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한 국민의힘 의원은 “영국은 원전을 늘리겠다는 의지가 확고해졌고 UAE 자금력도 있다는 점에서 무어사이드 때와는 상황이 달라졌다. 영국 원전 수주 가능성은 높고, 미국이래도 가능하다고 본다”고 내다봤다.
영국과 UAE는 최근 청정에너지 투자 MOU를 맺은 터라 UAE의 금융조달을 영국이 마다할 이유는 없다. 그랜트 샤프스 영국 비즈니스에너지산업전략부 장관과 수하일 알 마즈루이 UAE 에너지인프라부장관은 16일(현지시각) 영국에서 해당 MOU에 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