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내 벤처투자 시장을 활성화 하기 위해 글로벌 투자 유치에 힘을 주고 있다. 벤처기업의 해외시장 진출을 확대하고, 모태펀드 예산 삭감과 3고(고물가ㆍ고금리ㆍ고환율)로 잔뜩 움츠러든 투자 분위기를 회복시키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18일 마티아스 코먼 OECD 사무총장을 만나 국내 우수 창업‧벤처 사례와 주요 정책을 OECD 회원국과 공유할 수 있는 정기 세미나 개최 등을 제안했다. 칼리드 빈 압둘아지즈 알 팔레 사우디아라비아 투자부 장관과의 면담도 이뤄졌다. 양 측은 스타트업 교류 협력을 더 강화해 나가는 데에 공감했다. 지난해 11월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방한 시 벤처투자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한 것과 관련해 공동펀드 조성도 제안했다. 이 장관은 사우디 투자부 장관과 면담에서 “글로벌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유망 중소기업ㆍ스타트업 육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앞서 이 장관은 아랍에미리트(UAE) 경제부와 ‘기업가형 국가 2.0(Entrepreneurial Nation 2.0)’ 에서 한국이 파트너 역할을 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양해각서의 후속 조치를 속도감 있게 추진할 수 있게 UAE 타니 알 제요우디 무역부 특임장관과도 면담을 이어갔다.
이 장관의 이같은 행보는 국내 벤처와 해외 벤처 간 교류의 물꼬를 트고, 국내 벤처들의 수출 활로를 찾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선 오일머니 유치로 얼어붙은 국내 벤처투자 시장의 분위기를 회복시키려는 의도도 녹아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기부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벤처펀드 결성 규모는 3조5307억 원을 기록했다. 작년 1분기 2조6668억, 2분기 1조8610억 원, 3분기 2조6701억 원을 크게 뛰어 넘는 규모다. 그러나 2021년 4분기(약 4조 원)와 비교하면 13.0% 감소한 수치다. 3고 부담에 벤처투자 시장이 크게 꺾인데다 정부가 모태펀드 예산을 삭감하면서 위축을 가속화 시켰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정책금융 출자자 중 가장 큰 축을 담당하는 모태펀드는 1조3971억 원을 기록했다. 출자액 규모로 보면 역대 2번째지만 전년과 비교하면 12.6% 줄었다. 지난해 벤처투자 규모 역시 1분기 2조2116억 원, 2분기 1조9111억 원, 3분기 1조2525억 원으로 빠르게 식고 있다.
특히 정부는 그간 미국과 아시아 중심으로 운영된 해외 벤처 네트워크를 중동과 유럽으로 확장하려는 의지를 보여 왔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중동 국부펀드의 투자 성향과 국내 벤처투자 유치 가능성 진단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벤처투자 상위 10개 국부펀드 중 4개가 중동 국부펀드다. UAE,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요 중동 국가로부터 적극적인 투자 유치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번 중동 방문으로 국내 글로벌 펀드 투자 규모를 8조 원 이상까지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점치고 있다. 글로벌 펀드는 해외 벤처캐피탈(VC)이 운용하는 모태펀드 자펀드다. 지난해 기준 글로벌 펀드 규모는 약 6조9000억 원이다. 여기에 이 장관이 지난해 9월 한미 스타트업 서밋에서 협의한 2억2000만 달러(약 2748억 원), 올해 예정된 1000억 원의 투자를 더해 8조 원 조성이 가능할 것이라는 게 중기부의 설명이다. 특히 이번 오일머니 유치로 펀드 규모를 목표치보다 더 늘릴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도 나온다. 임정욱 중기부 창업벤처혁신실장은 최근 열린 간담회에서 “중동 투자가 추가되면 플러스 알파(+α)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일각에선 정부가 실제 오일머니를 유치하기 위해선 국내 벤처업계의 한계점을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권재한 중기연 선임연구원은 “중동은 바이오ㆍ헬스 분야에 상대적으로 초기 단계부터 투자하는 성향을 보여 단기적으로 이 분야 투자 유치를 집중 공략해야 한다”며 “중동 국부펀드는 거대 소비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소비기반 플랫폼을 선호하는 만큼 내수보다 글로벌 소비시장이 큰 인도, 동남아, 중앙아시아 등을 목표로 한 소비 기반 플랫폼 기업을 집중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