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금요일 오후 6시 14분. 노트북을 덮고 퇴근길에 오르던 순간 한 통의 메일이 날아왔다. 중소벤처기업부의 보도자료다. 지난해 벤처투자 실적 관련 자료였다. 오후 6시 이후 배포된 자료는 장ㆍ차관의 특별한 행사, 관련 법 제정 등을 제외하곤 몇 없다. 그동안 실적 자료는 배포가 계획된 날 오전 8시에 맞춰 기자들에게 뿌려졌었다. 이날 중기부가 배포 날짜를 어기지는 않았지만, 암묵적인 시간을 지키지 않은 것에 남모를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메시지는 자료를 열자 금방 알 수 있었다.
포장술이었다. 벤처투자 실적 발표의 내용의 주는 통계치다. 벤처ㆍ스타트업에 얼마나 투자했고 몇 퍼센트가 증감했는지만 보여주면 된다. 하지만 이날 자료에는 수치를 감싸는 포장들이 잔뜩 있었다. 몇 년간 상승을 멈추지 않았던 벤처투자가 지난해 3분기부터 하락세로 전환하자, 이를 감싸는 어휘와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데이터를 가져왔다. 수치 사이에 “비록 줄기는 했으나 2021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다”, “벤처투자가 미국은 30.9%, 이스라엘은 40.7% 감소한 것과 비교해볼 때, 국내 벤처투자 감소율은 상대적으로 작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등의 문장을 넣으며 내림세를 포장했다.
중기부의 포장술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하락이 시작됐던 지난해 3분기 실적 자료에선 1ㆍ2분기 실적과 엮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고 자평했다. 특히 △업종 △업력 △후속투자 △대형투자 등에 관한 내용도 3분기가 아닌 1~3분기로 통계를 냈다. 이 자료는 3분기 벤처투자 실적이란 제목으로 배포가 됐지만, 해당 분기의 데이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중기부는 고금리ㆍ고물가가 벤처투자 하락을 이끌었다고 판단했지만, 벤처캐피탈(VC) 업계는 정부를 쳐다봤다. 정부의 모태펀드 예산 삭감이 신호탄이 돼 벤처투자 열기를 꺾이게 했다고 바라봤기 때문이다. 대외 여건이 악화하면서 유동성을 수혈할 정부가 곳간을 닫자 스타트업들은 한계기업 위기에 직면했다. 하락세는 올해 더 커질 전망이다. 중기부가 추락하는 실적 자료를 어떻게 포장할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