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가격 담합에 가담한 한 업체가 처벌을 피하기 위해 검찰에 자수(‘리니언시’, 자진신고자 감면제도)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 기업을 재판에 넘겼다. 바로 아이스크림 담합 사건이다. 리니언시를 신청한 기업에 형사면책이 의무는 아니기 때문에 검찰의 공소제기는 문제없다는 시각이 있지만, 한편에서는 검찰의 공소권 남용이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내달 2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될 아이스크림 담합 관련 공판에서 피고인 빙그레 측은 검찰의 기소가 부적절하다는 취지로 주장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공정거래법에 따라 리니언시 기업과 관련 정보는 공개가 금지되지만, 다수의 공정거래 전문가들은 빙그레가 이 사건 검찰 단계에서 리니언시(형사감면신청제도)를 1순위로 신청한 것으로 보고 있다.
리니언시는 기업들 사이에 은밀하게 이뤄지는 담합을 적발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담합에 가담한 기업들 가운데 리니언시를 한 기업이 조사‧수사에 제공하면 공정위‧검찰이 일종의 면죄부를 주는 식이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검찰에 각각 접수할 수 있는데, 공정위는 과징금과 검찰 고발을, 검찰은 기소를 면제해준다.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빙그레가 검찰에 리니언시를 신청했다면 기소는 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검찰은 지난해 10월 19일 빙그레 법인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이와 함께 빙그레‧롯데제과‧해태제과 임직원 4명도 함께 기소됐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검찰이 형사 리니언시 제도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공정거래법 사건을 주로 담당하는 한 변호사는 “통상 검찰 단계에서 리니언시를 신청하면 검찰은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을 한다”며 “하지만 이번 아이스크림 담합 사건에서 검찰은 리니언시를 무시하고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거나 입찰방해 혐의 등 다른 형법으로 적용해 기소를 했다. 공소권 남용이라는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처벌이 면죄된다는 법리적인 판단으로 신청했는데, 검찰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법적인 안정성은커녕 제도적인 이점을 살리기 어렵다는 비판도 있다. 그럼에도 검찰이 기업의 리니언시 신청을 무시하고 기소하는 것을 두고 주도권 챙기기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도 제기된다.
반면, 형사 단계에서 리니언시를 인정해주는 것은 검찰의 권한이며 내용과 절차에 따라 받아들여주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기업이 담합을 주도하고 이익을 취한 뒤 리니언시로 선수 쳐서 공정위‧검찰 단계에서 과징금, 기소를 피하고 빠져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검찰은 이런 경우까지 폭넓게 살펴보고 기소해야 한다는 의견 또한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공정거래조사부는 지난해 12월 ‘보험 입찰 담합’ 사건과 관련해 담합에 참여한 삼성화재, 한화손해보험, 메리츠화재, 공기업인스컨설팅 등 4개사를 기소했는데, 담합을 주도한 KB손해보험은 기소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리니언시 제도의 한계’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 로펌 변호사는 “자수했다고 모든 죄를 봐주지 않듯 형사 리니언시 역시 사안의 중대성 등을 포괄적으로 보고 기소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일부 리니언시 사례가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만큼 검찰 안팎에서는 대검찰청 예규인 ‘카르텔 사건 형벌감면 및 수사절차에 관한 지침’을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검찰 리니언시를 접수한 기업들 가운데 일부는 수사에 다소 비협조적인 자세를 보이는 경우도 있고, 공정위 단계에서 리니언시를 접수한 뒤 검찰에는 뒤늦게 신고하는 등 접수 시점 차이를 악용하는 사례도 있다는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