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찬의 세금과 사회] 반도체 세제지원보다 더 필요한 것

입력 2023-03-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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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 교수, 포용재정포럼 회장

한국 수출에서 반도체의 비중은 압도적이다. 반도체는 국가전략산업이다. 자동차, 핸드폰, 의료기기, 첨단무기도 반도체가 있어야 만든다. 바이든 대통령이 반도체지원법을 내놓았다. 미국 내에서 반도체를 만드는 기업에 보조금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국제분업에서 미국과 유사한 경제적 입지에 있는 유럽연합(EU)도 충격을 수습하면서 맞불을 피우고 있다.

미국은 속속 그들의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1억5000만 달러 이상의 보조금을 받는 기업의 경우 예상을 초과하는 이익의 일부를, 보조금의 75%까지, 미국 정부와 공유해야 한다. 보조금을 받는 경우 미국 정부기관에 반도체 생산시설을 열어주어야 한다. 국가안보에 저해되는 요소를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회계자료도 제공해야 하며 중국 투자는 10년간 금지된다.

보조금을 받는 기업의 초과이익을 공유하겠다는 미국 정부의 입장이 크게 엇나간 것은 아니라고 본다. 국가예산이 투입되었으니 이익이 예상보다 많은 경우 회수하겠다는 것이고, 한도를 두어 보조금의 75%까지만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니 여기까지라면 수용이 가능한 내용이다. 중요한 것은 미국의 정책목표이다. 미국은 향후 최첨단 반도체의 연구개발, 설계, 생산이 모두 자국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첨단 메모리 반도체 생산에서의 한국의 위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국회는 반도체 등 국가전략기술 시설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를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8%에서 15%로, 중소기업은 16%에서 25%로 대폭 상향하는 내용을 논의하고 있다. 반대하던 민주당도 방향을 선회했다. 국가전략기술 시설투자의 범위를 당초 정부안은 반도체, 이차전지, 백신, 디스플레이로 한정했으나 민주당은 여기에 수소 및 미래형 이동수단을 추가하자고 제안했다. 미국이나 유럽이 반도체의 자국 내 생산에 대하여 보조금을 지불하는 것에 대한 한국의 대응이 반도체 생산시설에 대한 세액공제율의 상향조정이어야 하는가? 이렇게 끝낼 일이 아니다. 빠른 대응보다 숙고를 거친 대응이 필요하다.

세액공제율을 높여주는 방식으로 삼성전자나 하이닉스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고 미래에도 기술을 계속 선도할 수 있다고 보는지 의아스럽다. 2022년 말 삼성전자는 사내유보금이 209조 원, 하이닉스는 57조 원 정도에 이른다. 현금 및 현금성 자산도 충분하다. 세액공제를 통하여 이들에게 수조 원 혹은 그 이상의 세후소득을 더 남겨준다 한들 이들의 투자 행태가 바뀔 이유가 없다. 방패는 남아 있으나 칼이 부러진 병사에게 나라가 방패를 하나 더 지급하는 꼴이다. 아무것이라도 해야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서 알리바이를 만들듯이 대응책을 택하는 모습이다.

소득공제가 아니라 세액공제인데 투자액의 15% 혹은 25%를 제공한다고 한다. 어느 나라에서도 이렇게 높은 수준으로 세액공제가 제공되는 사례가 없었다. 이미 2022년의 세법개정에서 법인세율도 낮아졌고 통합투자세액공제제도는 확대되었다. 2020년 도입되면서 기재부가 연 5000억 원 세수감소 효과가 예상된다고 추정한 이 제도는 2023년에는 2조5000억 원의 조세감면을 제공할 것으로 조세지출보고서에 계산되었다. 별도로 연구개발(R&D)세액공제도 강력하게 남아 있다.

2023년 세수입은 위태로운 상황이다. 잘못된 2022년의 감세정책과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우리나라는 당분간 재정적자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에너지 위기와 인플레이션으로 고통받는 국민들에게 재정을 통하여 도움을 줄 여력이 취약한데 돈이 넘치는 몇몇 기업에 막대한 세액공제를 제공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가? 돈이 필요한 쪽은 서민들이고 반도체 기업들은 돈이 아니라 정부의 전력투구하는 외교통상정책이 필요하다. 새로운 반도체 제조시설을 유치하려는 미국이나 EU 입장은 우리와 다른 것이다. 대만이나 한국보다 제조단가가 30% 이상 더 높으므로 이를 감안해 주어야 해외기업들이 투자할 것이기에 보조금을 제공하는 것이다.

기업들도 나서겠지만 정부가 총력외교를 통하여 미국과 협상하고 투자의 조건을 바꾸어야 한다. 중국과의 거래도 일정 수준 양해를 받아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은 다른 나라를 침범하기에는 약한 나라이지만 침범하는 국가 입장에서 보면 약하거나 작은 나라가 아니다. 필요하면 스스로를 지정학적 지렛대로 활용하여야 한다.

긴 호흡의 산업정책적 고려가 필요하다. 1980년대 미·일 반도체 협정으로 만들어진 공백에 힘입어 다른 나라들이 하지 않을 때 기업들의 투자와 국가 차원의 인력 및 인프라 자원을 집중하여 우리는 첨단반도체 생산국가로 도약했다. 이제 미·중과 EU가 반도체산업을 안보전략산업으로 인식하고 그들대로 국가 차원의 투자를 준비하는 이상 향후 우리가 첨단반도체 생산국가로 남더라도 세계시장 점유율이나 창출되는 부가가치의 상대적 규모는 과거와 같을 수 없다. 때문에 국가의 한정된 재원을 실현하기 어려운 지나간 시기의 업적을 재현하기 위하여 반도체 분야에 집중하는 것은 산업정책과 혁신정책의 측면에서 바보짓이다. 해당 업종의 회사들이 지난 시기의 성공으로 자력 투자에 부족함이 없는 방대한 규모의 자금을 확보해두고 있는 것도 감안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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