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의현 영남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양회, 즉 전국인민대표자대회와 정치협상회의는 매년 3월 개최되는 중국의 최대 정치행사로 보통은 그해의 경제정책에 대해 관심이 쏠리게 되는데, 올해는 시진핑 3기의 첫해이기에 누가 주요 직책을 맡게 되는지가 관전 포인트였다. 사람을 보면 그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짐작할 수 있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리창 총리의 임명은 정책의 단일대오를, 인민은행 이강 총재의 유임은 중국 경제의 안정성 유지를 중요하게 판단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중국의 반도체 정책도 사람을 통해 그 방향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새로 전국인민대표로 임명된 인사 중에는 반도체를 포함한 첨단기술 분야 인물들이 다수 포함되었다. 중국의 간판 반도체 회사인 SMIC의 궈후이친, 파운드리 업체 이인자인 화홍반도체의 장수신, 반도체 소재 업체인 그리텍(Gritek)의 장궈후 등등이 신임 대표로 선출되었다. AI 기업인 아이플라이텍(iFlytek)의 리우칭펑 회장은 연임, 잘 알려진 휴대폰 회사인 샤오미의 레이쥔은 벌써 3연임이다. 면면을 보면 새로운 정부가 반도체를 위시한 첨단기술 분야를 전폭 지원함과 동시에 미국과의 기술경쟁에서도 뒤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중국 상장기업 중 브랜드 가치가 1위인 텐센트의 마화텅 회장이 인민대표 명단에서 빠졌다. 텐센트는 중국 정부에 미운털이 박힌 알리바바를 대신해 중국의 간판 브랜드로 성장한 첨단기술기업이고 당연히 정부와도 협조적인 관계에 있다. 다만, 고지식한 잣대로 보면 텐센트는 서비스(플랫폼) 기업으로 형상화된 제품을 직접 생산하지는 않는다. 국가를 위해서 일해도 국가가 원하는 그것을 만들지 못하면 별 볼 일 없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무리일까. 외신에 따르면 텐센트는 이번 탈락 건에 충격을 받는 모양이다.
이번 양회의 핵심 키워드는 사람이기에 시 주석이 공개적으로 누굴 만나서 어떤 발언을 했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3월 6일 시 주석은 장쑤성 인민대표단을 만난 자리에서 중국 최대 건설장비 회사인 XCMG의 220톤급 기중기 국산부품 비율이 2017년 71%에서 이제 100%가 되었다는 보고를 듣고는 반도체도 국산을 사용하는지 질문했다고 한다. 이에 담당자가 모두 국산이라고 대답하자 시 주석이 치하했다고 전해진다. 기중기에 들어가는 반도체라면 첨단이라고 부르기엔 무리가 있고, 일반적인 가전제품에 사용되는 저가형 반도체로 봐야 한다. 그렇다면 미국의 방해를 뚫고 첨단제품을 독자 개발하는 게 반도체 정책의 목표가 아니라는 뜻이다. 국산 반도체를 사용해야 애국기업이다.
시진핑 집권 1기부터 과학기술 분야 정책은 ‘서양(오랑캐)의 기술을 배워 서양을 제압(師夷長技以制夷)한다’였다. 중국은 그동안 서양의 기술을 사 오거나, 훔치거나, 또는 기술자를 스카우트하거나 하여 반도체 기술을 조금씩 늘려왔다. 그런데 이제는 미국의 강력한 제재로 서양으로부터 기술을 배우기도, 최첨단 반도체를 생산하는 것 또한 상당히 어렵게 되었다.
중국의 선택은 미국이 구축한 반도체 공급망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이다. 반도체 기술에서의 탈동조화, 미국과 다른 방향에서 중국 반도체의 새로운 기술 표준을 만드는 전략이다. 화웨이는 최근 자사 제품 속 부품 1만여 개를 중국산으로 교체했고, 회로기판 4000개를 재설계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신기술보다 국산화율 제고가 더 중시된다면 중국의 반도체 산업이 갈라파고스 증후군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독자적이기는 하지만 기술발전이 고립화되어 경쟁력을 갖지 못하는 상황 말이다.
시진핑 집권 1기인 2015년에 마련된 ‘중국제조 2025’는 10년 동안 첨단산업에서 기술추격을 완성하고, 기술자립을 이룬다는 원대한 목표를 제시하였다. 2025년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중국의 기술정책은 ‘첨단’을 버리고 ‘자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마도 기술적으로 범용 반도체의 성능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면서 생산량을 늘리는 데 주력할 것이다. 그리고 때가 되면 미·중 기술경쟁에서의 승리를 선언할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