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적 연대보증‧대위변제‧담보매입 의무부과 부당”
대출 이용자를 알선해주면 일정한 수수료를 주는 대신 상환 기한이 넘어가면 알선자가 무조건 대출금을 모두 떠안게 한 위탁 계약은 부당한 거래여서 무효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수산물업체 A 사가 금융업체 B 사를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에서 B 사의 손을 들어준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22일 밝혔다.
법원에 따르면 A 사와 B 사는 2014년 대출업무 위탁 계약을 체결했다. A 사가 수산물 담보 대출 상품을 이용할 업체들을 알선하면, B 사가 대출금 중 1%를 업체들로부터 받아 A 사에 0.5~0.8%를 수수료로 주기로 했다.
위탁 계약상 문제는 A 사가 대출 때마다 연대보증을 서야 했으며 돈을 빌린 업체들이 상환 기한을 넘기면 ‘무조건’ 대출금을 대신 갚고 담보를 매입할 의무도 졌다는 데 있다.
계약에 따라 A 사가 2015~2016년 알선해 B 사의 대출을 받은 업체는 모두 6곳에 대출금은 200억~300억 원에 달했다. A 사는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한 업체들 대신 B 사에 원리금 10억7000여만 원을 대신 갚았고, 창고보관료로도 1억5000여만 원을 썼다.
참다못한 A 사는 B 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A 사는 “우리 회사는 오로지 B 사와의 거래를 위해 설립된 업체”라며 “B 사가 고의‧과실과 상관없이 무조건적인 연대보증과 담보물 인수 책임을 부담케 하는 등 거래상 지위를 남용했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는 민법 제103조를 근거로 두 업체 간 연대보증 약정 부분을 무효로 결론 냈다.
대법원은 “A 사는 대출 이용자를 선별‧알선할 의무만 부담할 뿐”이라며 “이용자의 채무 불이행으로 대출금 회수가 어려워짐에 따른 위험을 부담할 주체는 원칙적으로 B 사”라고 지적했다.
담보물 검수‧평가를 해야 하는 A 사가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아 B 사가 손해를 입었다면 A 사에 배상 책임이 있겠지만, B 사에 대해 무조건적인 연대보증, 대위변제, 담보 매입 의무를 부과해 부당하다는 취지다.
박일경 기자 ek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