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일정 두고 간사 간 협의 거쳤으나 불발…3월 통과 사실상 불가능
나랏빚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재정준칙' 법안이 결국 소위 논의 테이블에도 오르지 못하고 이달 본회의 내에 통과될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재정준칙안은 여야 간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야당이 발의한 '사회적 경제 기본법' 등을 두고 여야가 충돌하면서 다시 후순위로 밀렸다.
26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야는 지난 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 이후 공급망법과 재정준칙 등의 논의를 위한 경제재정소위원회 일정을 두고 간사 간 협의를 거쳤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해 결국 불발됐다. 이에 따라 2016년 관련 법안 제출 이후 7년 만에 통과될 가능성이 커졌던 재정준칙은 결국 이달 내 통과가 사실상 어려워졌다.
지난해 9월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발의한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을 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로 유지하되 국가채무비율이 GDP의 60%를 초과하면 적자 폭을 2% 이내로 유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재정준칙은 나라 살림의 건전성 지표가 일정 수준을 넘지 않도록 관리하는 규범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와 튀르키예만 도입 경험이 없을 정도로 국제적으로 보편적인 재정관리 기준이다. 문재인 정부도 통합재정수지를 중심으로 한 재정준칙 도입을 추진했지만, 결국 국회 소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에 정부는 통합재정수지보다 엄격한 관리재정수지를 기준으로 한 새로운 재정준칙안을 마련했다.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빼 계산하는 통합재정수지와 달리 관리재정수지는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성 기금 수지를 제외하고 산출해 나라의 실질적인 재정 상태를 보여준다. 여기에 전쟁·대규모 재해, 경기침체 등 예외적 상황에서는 준칙적용을 면제해 재정의 역할을 담보하겠다는 내용도 담았다.
정부·여당은 재정건전성을 강화하고 안정적으로 재정총량을 관리하기 위해 재정준칙의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야당은 복합적인 경제위기 상황에서 오히려 재정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해왔다. 여야는 이후 큰 틀에서 법안의 쟁점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했고, 정부에 일부 내용을 보완하도록 요구했다. 이에 정부는 기존 재정준칙보다도 재정 통제 수위를 높인 수정안을 국회에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가 이같은 내용을 담은 수정안을 국회에 보고했지만, 21일 열린 경제재정소위에서는 공공기관에 '사회적 기업' 물품 등의 구매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사회적 경제 기본법'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여야가 이견을 보이면서 결국 통과가 불발됐다.
사회적 경제법은 공공기관의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등 '사회적 경제 조직'이 생산한 재화·서비스에 대한 우선 구매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21일 열린 소위 회의록에 따르면, 정부와 국민의힘은 이미 다양한 유형의 사회적 기업들을 지원하는 개별법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관련 법안이 필요하지 않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충분히 합의를 거치지 않고 본격적인 심사도 안 한 상태에서 여당이 반대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며 맞섰다.
특히, 재정준칙과 관련해서도 여전히 여야 간 이견이 존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회의록에 따르면, 기재위 민주당 간사이자 경제재정소위원장인 신동근 의원은 이날 회의에서 "그 부분(재정준칙 도입)에 대해서 여야 간의 이견이 해소되지 않았고, 근본적으로 필요성에 동감하지 못하는 입장에 있다"며 "한정된 재원을 어떻게 권위적으로 분배하느냐는 국정철학을 운영하는 집단 등의 철학이 반영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당 간사인 국민의힘 류성걸 의원은 이투데이와의 통화에서 "간사 간 협의를 했는데 민주당이 합의하지 않아서 이번 3월 국회에서는 재정준칙 처리가 사실상 어렵다"며 "재정준칙 관련해서는 민주당이 요구하고 심사과정에서 논의됐던 내용을 반영한 정부안을 제시했고 사실상 거의 합의에 이를 정도였지만, 어쨌든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야당 측은 재정준칙과 관련해 아직 합의도 되지 않았고, 다른 법안도 밀린 상황에서 여당이 일방적으로 회의를 추진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기재위 야당 간사인 신동근 의원실 관계자는 "재정준칙은 지난 소위 때 논의가 됐고, 보류된 상황에서 여당이 일방적으로 끌고 가려고 다시 소위 일정을 잡으려는 것"이라며 "공청회도 하고 소위에서 논의도 했는데 여야 의견이 안 모였으면, 일단 보류하고 쌓인 다른 법안부터 먼저 논의할 생각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