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혁신 때리기와 벼랑 끝 ‘로톡’

입력 2023-03-30 06:00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김동효 중소중견부 차장

“기득권 유지와 지대(地代) 추구에 매몰된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신년사를 통해 던진 말이다. 노동ㆍ교육ㆍ연금, 3대 개혁에 대한 강경 드라이브의 예고였다. 집요한 기득권의 고집을 변화시키고, 이 과정에서 타협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재확인시켰다. 비슷한 언급은 지난달 연세대 학위수여식에서 다시 나왔다. 이날도 윤 대통령은 “부당한 지대 추구가 방치되면 어떻게 혁신을 기대하고 미래를 이야기하겠느냐”고 청년들에게 반문했다. 혁신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강조한 기득권 카르텔의 ‘저항’과 ‘혁신’의 문제는 최근 전통업계 이해집단과 플랫폼 업계를 뜨겁게 달구는 쟁점이다.

로톡과 변협의 10년 법적 다툼

로톡은 로앤컴퍼니가 운영하는 법률 서비스 플랫폼으로 2014년 가동을 시작했지만, 이듬해부터 법조계와 기나긴 싸움에 들어갔다. 대한변호사협회가 로톡 서비스는 법률 브로커 행위에 해당한다며 검찰 고발을 이어갔다. 3차례에 걸쳐 불기소 처분이 나왔고, 변호사를 징계하는 변협의 규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일부) 위헌 결정도 이어졌다. 변협은 그러나 로톡 서비스 가입 변호사를 무더기로 징계했다. 10년에 걸친 법적 다툼은 단순한 견제로 보기 어렵다. 사실상 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때까지 쥐어짜 시들게 하려는 고도의 전략처럼 비친다. 지독한 저항이다.

로톡을 위기로 몰아넣은 건 변협만은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변협과 서울지방변호사회가 경쟁을 제한했다고 보고, 양 측에 각각 10억 원씩 최고 과징금을 부과했다. 그러나 속내는 석연치 않다. 로톡이 공정위에 변협을 신고한 시점은 2021년 6월. 이번 판단이 나오기까지 무려 2년이 걸렸다. 법무부도 자유롭지 않다. 로톡 가입 변호사를 징계한 변협의 조치가 적절했는지 여부를 이달 초까지 판단해야 했지만, 법무부는 이에 대한 답을 3개월 미뤘다. 사안의 중대성과 심도 있는 논의의 필요성이 이유라는데, 어쩐지 불편한 관대함이다. 현재 플랫폼 업계에서 스타트업 닥터나우는 약사협회와, 부동산 중개 플랫폼 직방은 공인중개사 업계와, 강남언니를 운영하는 스타트업 힐링페이퍼는 의사협회와 대치 중이다.

로톡의 상황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직원 수를 절반으로 줄였고, 여전히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4000명에 육박했던 회원 변호사 수는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다. 벤처투자 시장이 혹한기에 들어서면서 자금줄은 말랐다.

국내 리걸테크가 수십 보 후퇴하는 동안 주요국들의 리걸테크는 진일보 했다. 작년 9월 기준 전 세계 리걸테크 업체 수는 7000여 곳, 투자 규모는 113억 달러(약 14조7000억 원)에 달한다. 이 중 최근 2년간 유치된 자금만 48억 달러다. 기업가치 1조 원 이상의 유니콘기업은 7개 사로 늘었고, 예비유니콘은 27개 사가 됐다. 일본 ‘변호사닷컴’은 2015년 상장해 시총 3조 원으로 몸집을 불렸다. 일본인변호사연합회는 중개형 플랫폼은 규제하지만, 광고형 플랫폼은 운영을 허용한다. 로톡 역시 광고형 플랫폼이다. 미국에선 ‘리걸줌’이 2021년, ‘피스컬노트’가 2022년 상장했다. 리걸줌의 2021년 매출은 7095억 원에 이른다. 최근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미국변호사협회(ABA) 테크쇼에선 변호사 등 법률 전문가와 리걸테크 업체 등이 함께 토론하고, 새로운 기술을 공유했다. 수년째 대립각을 세워온 우리와 사뭇 다른 풍경이다.

기득권의 저항에 스러지는 스타트업

전통업계가 혁신 때리기에 나서는 건 내 밥그릇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일 것이다. 이해집단을 악으로만 치부하기 어려운 이유다. 다만 변협은 청년 법조인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큰 로펌에 소속되지 않고,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젊은 변호사들의 경우 치열한 경쟁 속에서 로톡에 대한 기대감이 적지 않다. 최종 지향점은 기득권 지키기보다 소비자가 돼야 한다.

‘타다’ 퇴출에서 학습했듯 ‘혁신 때리기’의 핵심은 한 기업의 존폐가 아니다. 벤처 생태계를 뒤흔드는 트리거이고, 장기적으로는 산업과 국가의 경쟁력과 직결된다. 윤 대통령은 ‘혁신’을 앞세운 스타트업 육성과 중동 벤처붐을 강조하며 대한민국 영업사원 1호만 자처해선 안 된다. 기득권이 만든 저항의 격랑에 힘없는 스타트업들이 조용히 스러지고 있는 그 이면을 봐야 한다. 부당한 지대추구가 방치되면 혁신을 기대하고 미래를 이야기 할 수 없지 않나.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