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분 비용 줄여 가공 시장 활성화…수출 확대 기대감도 커져
쌀 소비량은 줄어드는데 쌀 생산량은 여전하다. 매년 '풍년의 역설'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지난해 1인당 쌀 소비량은 56.7㎏까지 낮아졌다. 반면 밀 소비량은 꾸준히 증가해 쌀 소비량의 절반을 넘어선 32㎏까지 늘었다. 이제 밀은 제2의 주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국내 밀 자급률이다. 우리의 쌀 자급률은 100%에 육박하지만 밀 자급률은 1% 수준에 불과하다. 부족한 밀은 수입에 의존한다. 매년 수입되는 밀은 약 200만 톤에 달한다. 쌀은 공급이 넘쳐 가격이 떨어지고 수입하는 밀은 부르는 값에 사와야 하는 실정이다.
해결사로 등장한 것이 바로 가루쌀이다. 가루쌀의 매력은 '겉쌀속밀'이다. 가루쌀은 일반 쌀과 다른 전분 구조를 가지고 있어 손으로도 쉽게 가루를 만들 수 있다. 말 그대로 겉은 쌀이지만 속은 밀가루다.
가루쌀은 밥을 지을 수 없지만 가루로 빻아 쓰기에는 최적화돼 있다. 예전처럼 물에 불리는 습식제분을 하지 않아도 돼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고, 환경오염도 줄일 수 있다. 가루쌀이 과도한 쌀 생산과 늘어나는 밀 수입을 대체할 수 있는 '신의 한 수'로 평가 받는 것은 이러한 특성 때문이다.
가루쌀이 구원투수로 주목을 받는 이유는 건식제분 때문 만은 아니다. 기존 쌀과 같은 재배 방식을 가지고 있지만 생육 기간이 짧아 이모작을 쉽게 할 수 있다. 특히 5~6월 모내기를 하는 벼와 달리 7월에 이앙해 동계작물과 이모작하기에 충분하다. 이 경우 올해 시행하는 전략작물직접지불제의 적용도 받는다.
정부도 가루쌀 확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올해 가루쌀과 관련해 전문생산단지 육성에 31억 원, 제품 개발 지원에 25억 원 등 71억 원의 가루쌀 산업화 예산을 책정했다.
올해 전문생산단지는 38곳을 선정했고, 2000h에서 1만 톤의 가루쌀이 생산될 예정이다. 생산하는 쌀은 전량 정부가 매입한다. 정부는 전문단지를 중심으로 생산량을 꾸준히 늘려 2026년에는 200곳의 전문생산단지를 선정, 4만2000h에서 20만 톤의 가루쌀을 생산한다는 목표다. 이를 통해 현재 1% 수준인 밀가루 자급률은 2027년 2.9%까지, 45.8%인 식량자급률은 2026년 52.5%까지 올라갈 전망이다.
가루쌀을 통한 쌀 가공식품 시장 확대도 기대를 모으는 부분이다. 밀가루와 달리 가루쌀은 단백질 성분인 글루텐이 없다. 글루텐은 반죽을 부풀 게 만드는 역할을 하지만 먹으면 속이 더부룩해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가루쌀은 알러지를 유발하지 않는 '글루텐 프리' 상품으로 건강 식재료 시장 진출이 용이하다.
한국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중국 이유식 쌀가루 시장 규모는 63억2000만 위안, 우리 돈으로 1조2000억 원 수준이다. 일본 쌀가루 시장 역시 최근 5년 동안 약 2배 가까운 소비 증가로 약 4.3만 톤 수요에 달한다. 글루텐 프리 세계 시장 규모도 2021년 기준 78억6000달러 수준에 2022년부터 연평균 8.1% 성장이 전망된다.
쌀가공시장의 규모가 커지고 수익의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에 업체들의 가루쌀 제품 생산도 활기를 띄고 있다. 올해 농림축산식품부의 '가루쌀 제품 개발 지원 사업'에는 15곳의 식품업체가 참여해 19개의 제품을 생산한다. 대기업인 농심과 삼양식품, SPC 등을 비롯해 빵집으로 유명한 대전 성심당, 이성당 등도 가루쌀 제품 개발에 뛰어들었다.
취임 직후부터 꾸준히 가루쌀을 중요성을 강조해왔던 정황근 농식품부 장관은 가루쌀을 '신의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쌀 수급 균형과 밀가루를 대체해 수입량을 줄이고 식량안보를 강화할 수 있는 핵심 수단이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아울러 가루쌀이 쌀값 안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것이 정 장관의 생각이다. 정 장관은 "쌀이 과잉돼 쌀값이 떨어지고 이를 매입하는데 많은 비용을 써야 하는 상황"이라며 "정부가 가루쌀 산업화를 통해 쌀 수급 균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