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업체들도 러 사업 축소·철수 검토 중
푸틴, 곡물 수출 지정학적 무기로 활용
식량은 제재 대상 아니지만, 러 국영업체들은 제재 대상
1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글로벌 곡물 시장에서 러시아 정부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면서 글로벌 곡물 공급과 가격 불안정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난주 4대 곡물 메이저 중 하나인 카길과 또 다른 곡물 대기업 비테라(Viterra)가 러시아산 곡물 선적을 중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소식통과 러시아 현지 언론에 따르면 또 다른 곡물 메이저 아처대니얼스미들랜드(ADM)도 러시아 사업을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루이드레퓌스는 현지 사업 축소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비테라와 카길은 지난 수확시즌 러시아산 곡물 전체의 14%를 선적했다. 하지만 러시아 정부는 이들 외국 곡물 수출업체들의 수출 관련 서류 심사를 더욱 까다롭게 진행하는가 하면 올해 12월까지 러시아 내 자산을 포기하라고 압박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른바 ‘식량 주권’을 정책적 우선순위로 삼고 곡물 수출을 지정학적 권력과 무기로 활용하면서 러시아 정부 지원을 받는 곡물 무역업체들이 빠르게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 국영기업 OZK는 최근 현지 곡물 수출업체 톱 5위권에 진입했다. 러시아 국영은행 VTB는 지난해 곡물 수출 사업에 뛰어들고 나서 비테라와 카길로부터 빠르게 시장점유율을 뺏어오고 있다.
러시아 농업 컨설팅 기업 소브에콘(SovEcon)의 안드레이 시조프 이사는 현 상황에 대해 “러시아로서는 현지 업체들과 거래하는 것이 더 용이하고 수출 흐름을 통제하기가 더 쉬워진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세계 최대 밀 수출국이다. 러시아 곡물 수출은 지난 20~30년간 글로벌 메이저 업체들의 매출을 견인해온 한 축이기도 했다. 이 기간 러시아 밀 수출은 5배로 급증했고, 그만큼 글로벌 곡물 시장에서 러시아의 존재감은 커졌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곡물 공급망 혼란이 커진 것도 이 때문이었다.
우려를 의식한 듯 러시아 농업부는 최근의 시장 변화가 러시아산 곡물 수출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 전문가들은 러시아 정부가 곡물 가격이나 거래조건에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당장 러시아가 민간업체를 배제하고 국가 간 거래를 늘릴 가능성이 거론된다. 러시아 국영기업 OZK는 지난해 “글로벌 곡물 무역업체 개입을 완전히 배제하고, 수입국과 직접 협력하기를 원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식품 자체는 대러 제재 대상이 아니지만, 곡물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한 러시아 국영업체나 국영은행은 모두 제재 대상이라는 점이다. 이는 곧 공급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스톤X의 매트 암머만 상품 리스크 매니저는 “러시아 정부가 곡물 시장에 더 많이 개입하게 되면 시장 관점에서는 더 많은 리스크가 생긴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