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행안부 장관 탄핵심판’ 준비절차 개시
‘법 위반 중대성’ 이태원 참사 책임소재 쟁점
‘명백한 법 위반’ 존재 여부로 법정공방 예상
접수 날부터 180일 이내 결정해야…심리 속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10‧29 이태원 참사’에 관한 책임이 있는지를 가리는 탄핵 재판이 4일 시작됐다.
헌법재판소는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재 소심판정에서 탄핵을 청구한 국회 측과 피청구인인 이 장관 측 법률대리인들을 불러 변론준비기일을 열었다.
국회는 이 장관의 탄핵 사유로 △재난 및 안전관리 업무를 총괄해 재난예방대책을 수립‧시행했어야 함에도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 등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상 사전 재난예방 조치의무 위반 △헌법상 국가의 기본적 인권 보장 의무를 다하지 못한 책임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 및 품위유지의무 위반 등을 거론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탄핵소추안에서 “(이태원 참사 당시) 재난 및 안전관리 사무를 총괄‧조정해야 할 책임이 있음에도 대형 참사를 예방하기 위한 사전 재난예방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재난대책본부를 적시에 가동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 장관의 법률대리인 윤용섭 변호사는 탄핵 사건 변론준비기일에 출석하며 취재진과 만나 “파면당할 만큼 중대한 위법이 없었다”고 반박했다. 윤 변호사는 “행안부 장관은 재난 대응과 관련해 최상의 총괄 조정자가 맞지만 정작 이 사건에서 문제되는 재난 현장 긴급 구조활동과 관련해선 지휘‧감독권은 물론 아무런 개입‧관여 권한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것이 바로 (국회가) 재난안전법을 제정하며 내린 입법적 결단이고, 현실적으로도 옳다”며 “이번 소추는 깊이 숙려하지 않고 성급하게 내린 결정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고 덧붙였다.
탄핵 소추를 의결한 국회 측과 국회로부터 탄핵 소추된 이 장관 측 대리인 주장에서 보듯, 쟁점은 역시 이 장관의 법 위배 여부와 사안의 중대성이다. 헌재의 기존 판례상 탄핵을 위해선 단순히 법 위반이 있었는지에 그치지 않고 ‘법 위반의 중대성’까지 입증돼야 한다.
따라서 이 장관에게 재난안전법‧국가공무원법 등 실정법을 어긴 구체적인 사례가 존재하는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앞으로 양측은 이 장관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인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명백한 법 위반인지 등을 다툴 것으로 예상된다.
이 장관은 입각 전 10여 년간 몸 담은 법무법인(유한) 율촌에 이번 탄핵 사건을 맡겼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을 대리해 탄핵 기각 결정을 받은 윤 변호사 외에도 2006~2012년 대법관을 지낸 김능환 율촌 고문 변호사가 대리인단에 참여한다. 이 장관 대리인단에는 안대희 법무법인 평안 고문 변호사도 이름을 올려 전직 대법관 2명이 합류했다.
국회 측은 김종민‧최창호‧노희범‧장주영 변호사를 대리인단으로 선임했다. 김‧최 변호사는 국민의힘이, 노‧장 변호사는 민주당이 각각 추천했다.
국회 측 대리인단 대표인 김종민 변호사는 “이번 사건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다”며 “헌재가 신속하게 집중 심리해 실체를 밝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소추위원(검사 역할)인 김도읍 법제사법위원장이 여당이라 적극적으로 탄핵 심판에 임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엔 “특별히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면서 “소추 대리인으로서 충실히 역할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변론준비기일은 양 당사자들을 불러 주장과 증거를 둘러싼 쟁점을 정리하는 절차다. 청구인‧피청구인 본인이 출석할 의무는 없어 이날 헌재에는 대리인들만 나왔다. 양측은 이 자리에서 각자의 주장을 재판부에 설명하고 앞으로 변론기일에 나올 증인과 증거를 논의한다.
올해 2월 국회는 민주당 등 야 3당이 공동 발의한 이 장관의 탄핵소추안을 의결했다. 국무위원에 대한 탄핵소추는 75년 헌정 사상 처음이다. 같은 달 국회의 탄핵소추의결서를 접수한 헌재는 이종석 재판관을 주심으로 지정하고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쟁점과 법리를 검토해 왔다. 변론준비절차를 책임질 수명 재판관은 이종석‧이미선‧문형배 재판관 등 3명이다.
변론준비기일 이후에는 정식 변론기일과 재판관들이 쟁점을 논의하는 평의 절차가 이어진다. 재판관 9명 중 6명 이상이 찬성하면 피청구인의 파면 결정을 내릴 수 있고, 파면된 사람은 5년 동안 공무원이 될 수 없다.
기각이나 각하 결정이 나오면 이 장관은 직무에 즉시 복귀한다.
헌법재판소법은 탄핵 사건을 접수한 날부터 180일 이내에 결정을 선고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중앙부처 장관의 공석이라는 ‘비상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헌재가 심리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박일경 기자 ek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