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경진 중소중견부장
“우리나라(미국)는 국민의 정부이면서, 국민에 의한 정부이면서, 국민을 위한 정부로서 결코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160년이 지난 2023년 세계화를 주도하던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법 등을 통해 탈세계화하는 형국이다. 미국이 주도하던 세계화에 수출주도 성장으로 가장 큰 수혜를 보던 우리나라로서는 거시적인 측면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다.
미국의 탈세계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도 하기 전인데도, 우리나라는 무역적자로 돌아서 있는 상황이다. 미국의 반도체법이나 IRA법 등으로 인해 국가적인 차원에서 보면 반도체나 자동차, 전기차 배터리 기업들이 미국으로 수출하던 것은 이제 사라지게 된다.
국내 공장에서 생산해 수출하면서 발생한 매출에 따른 세금도 사라진다. 그저 미국 법인에서 수익이 발생해 배당할 경우 배당금이 국내로 들어와 배당세를 내게 될 뿐이다. 주요 수출품들이 이젠 수출이 아닌 미국 현지 법인 매출로 잡힘에 따라 앞으로 우리나라의 무역적자는 더더욱 깊은 늪으로 빠져들어 갈 수 있어 우려감이 깊다.
기업 측면에서 봐도 이미 투자한 생산 공장에서 수출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하고 이익을 챙기기도 전, 미국에 신규 투자에 나서야 하는 부담이 생겼다. 배터리 제조사는 통상적으로 1킬로와트(㎾) 생산시설당 1500억 원의 투자금이 발생한다.
매출 역시 1킬로와트당 1500억 원대의 매출이 발생하고, 생산시설 유지-보수 비용 등을 포함하면 세액공제를 받아도 최소 5년에서 7년이 지나야 투자금을 모두 회수하고 순이익을 챙길 수 있다.
그런데도 미국이 중국을 배제하는 법이라 자동차, 전기차 배터리 등 우리나라 기업들이 수혜를 볼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이번 IRA 세부안을 보면 그 어디에도 중국 배제라는 문구는 없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인프라 법 기준을 적용하면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 등이 명백하게 제외된다고 하지만 이는 아직은 예상이자 희망일 뿐이다.
오히려 이번 법안을 보면, 중국 광물과 소재의 우회로가 있다. 따라서 중국 배터리 소재 업체나 부품업체는 물론 배터리 제조사 역시 미국에 합작법인을 세우면 세액 공제 혜택을 받을 수도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 기업들이 주로 광물을 조달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와 아르헨티나가 핵심광물 협력국가 명단에 빠져 있다. 물론 현재는 국내로 들여와 가공을 거쳐 미국에 공급하면 된다. 하지만 이번 IRA 법안은 결국에는 배터리 밸류체인이 모두 미국에 있어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게 돼 있다.
즉, 우리나라를 거쳐 가공하고 다시 미국으로 보내는 것은 핵심광물 협력 국가에서 채굴해 바로 가공한 다음 미국으로 보낼 때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에 일부에서는 정부에서 나서서 미국에 아르헨티나 리튬을 허용하게 해야 한다는 다소 어처구니없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아르헨티나는 정치 이념이나 경제 문제로 군함까지 압류하며 서로 소원한 관계를 유지한 게 수십 년째다. 심지어 폐배터리는 무조건 북미에서만 해야 한다고 돼 있어, 국내 폐배터리 업체들에는 암울한 소식이다.
IRA법으로 국내 전기차 부품 생산 2차나 3차 벤더에서는 인수합병이 다양하게 일어날 것이다. 중소 전기차 부품업체가 직접 미국에 생산시설을 투자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당장 전기차 생산을 해야 하는 완성차의 1차 벤더들은 필요한 부품 하청업체를 아예 인수해서 같이 미국에 진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걱정은 기업이 아닌 우리나라 거시경제와 일자리가 줄어 고생할 국민이다. 미국의 탈세계화는 이제 시작이다. 유럽도 비슷한 방향으로 나갈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운영 방향도 바뀌어야 한다. 해외에 투자, 고용과 해외에 세금을 내는 기업에 지원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또한 기업이나 제품에 지급하는 각종 보조금도 재정비해야 한다.
이젠 기업에는 국적이 없다. 해외 기업이라도 우리나라에 투자하고, 고용을 일으키고, 세금을 내면 그것이 곧 우리 기업인 세상이다. skj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