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성 부족에 ‘유명무실화’ 가능성 여전
노조 “평가 부실이행 시 제재안 마련해야”
국내 은행의 점포 수 감소 폭이 3년째 세 자릿수인 것으로 집계됐다. 금융당국이 점포 감소 속도를 늦추기 위해 ‘소비자’ 중심으로 개선안을 마련했지만, 은행 점포 폐쇄 절차를 ‘자율 규제’가 아닌 법률이나 감독규정에 포함하는 방식으로 강제성을 둬야 폐쇄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점포 폐쇄 속도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금감원이 집계한 은행 점포 수 변동 추이에 따르면 지난해 말 국내 전체 은행 점포 수는 5800여 개로 2021년 말 대비 294개가 줄었다. 2021년보다 감소 폭은 줄었지만, 2020년 말 300개가 넘는 점포가 폐쇄된 이후 세 자릿수 폐쇄 추이는 계속되고 있다.
국내 은행 점포 수는 세계 주요국과 비교해도 적은 수준이다. 금융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인구 감소, 비현금결제, 비대면 금융서비스 증가 등 외부요인으로 인해 일본과 캐나다 등도 전체 은행 점포 수가 감소하고 있지만, 2020년 기준 성인 인구 10만 명당 은행 점포 수는 일본 33.9개, 캐나다 20.2개로 오히려 증가하거나 동일한 수준이다. 한국의 성인 인구 10만 명당 은행 점포 수는 2020년 기준 14.4개로, OECD 국가 수준을 밑돈다.
은행 점포 폐쇄는 대면 서비스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금융소외 현상을 심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속도 줄이기’가 필수 과제로 꼽힌다. 강다연 금융경제연구소 금융정책실 연구위원은 “연구 결과 대면상담을 통한 상품설명에 대한 수요는 디지털 이용에 익숙한 20대와 30대 청년층이 가장 많았다”며 “고령층뿐 아니라 청년층 소비자도 보안문제나 즉각적인 문제 해결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필요성에 최근 금융당국은 제도개선안을 내놨다. 12일 ‘제5차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실무작업반 회의’ 결과로 ‘은행 점포폐쇄 내실화 방안’을 발표했다. 핵심은 ‘사전영향평가’ 내실화다. 사전영향평가는 연령대별 고객 분포, 금융취약계층 분포 등 은행연합회가 마련한 기준에 따라 각 은행이 점포 폐쇄 시 고객 보호 방안을 자율적으로 마련해 시행하게 돼 있다.
다만, 사전영향평가와 관련해 여러 한계점이 제기돼 왔다. 점포 폐쇄 전 소비자 의견 청취 단계가 없고 평가에 참여하는 외부 전문가는 금융·법률 분야 1인으로, 소비자 분야 전문가가 부족하다는 점이 지적됐다. 평가항목 중 소비자의 불편, 피해 최소화와 관련된 항목의 비중이 작고 은행의 수익성, 성장 관련 항목의 비중이 크다는 점도 문제로 꼽혔다.
금융위가 이번에 ‘소비자’ 중심의 개선안을 발표한 이유다. 우선 각 은행이 내부 협의를 통해 점포폐쇄를 결정하기 전에 은행 이용고객을 대상으로 의견을 듣도록 폐쇄 절차에 ‘지역 의견 청취’ 단계를 신설하기로 했다. 사전영향평가 과정에서 점포 폐쇄가 소비자에 미치는 영향이 과소평가될 수 있다는 우려를 잠재우려는 조치다.
또한, 사전영향평가 시 외부전문가를 기존 1인에서 2인으로 확대하고 2명 중 한 명은 지역 인사로 선임해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기로 했다. 이밖에 평가항목에서 은행의 수익성, 성장 가능성과 관련한 항목은 아예 제외하고 금융소비자의 불편 최소화에 대한 비중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점포 폐쇄 속도를 늦추는 대책으로는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강제성 없이 은행의 ‘자율’에 맡기게 되어 또다시 유명무실한 개선안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금융노조는 “금융위와 금감원은 이번에도 은행 점포폐쇄 절차를 법률, 감독규정에 포함하는 방식이 아닌 은행들 간 자율규제인 ‘은행 점포폐쇄 관련 공동절차’의 틀을 유지했다”며 “현재의 급격한 점포폐쇄 속도를 늦추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외부 전문가와 관련한 개선안을 은행이 잘 지킬지 미지수다. 앞서 금감원, 은행연합회 등은 2021년 2월 금융·소비자 보호 분야에서 경험이 풍부하고 은행과 직·간접적으로 이해관계가 없는 인사를 외부 전문가로 선정해 사전영향평가 과정에 참여시키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달 금융위가 개별 은행을 대상으로 외부 전문가 평가 현황을 조사한 결과, 일부 은행이 그간 외부 전문가에게 점포 폐쇄 이전의 심사가 아닌 이후의 ‘사후 심사’를 맡겼다는 점이 드러났다.
이는 개별 은행의 의지에 따라 사전영향평가 수준이 천차만별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개선안에 외부 전문가 1명을 지역 인사로 선임해야 한다고 돼 있는데, 지역 인사는 당연히 해당 지역 영업점 폐쇄를 반대할 가능성이 크지 않느냐”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어 그는 “수익성이 평가항목에서 빠지면 마이너스가 나는 지역의 영업점을 그대로 유지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될 수도 있어 은행 입장에선 부담”이라고 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연합회 공동절차개정 후 은행 내규에 반영하는 것으로도 어느 정도 이행력이 담보된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만약 (은행이) 내규에 반영했는데도 제대로 안 지켜진다면 금융소비자보호법이나 은행법에 담아 강제력을 확보하는 안도 검토하겠다”며 “향후 실제 실행 상황을 모니터링하겠다”고 했다.
금융위는 내실화 방안을 통해 마련된 개선안을 ‘은행 점포폐쇄 관련 공동절차’ 개정을 통해 다음 달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다만, 이달 점포폐쇄가 이뤄지거나 결정되는 경우에도 대체점포 마련, 사후평가 실시 등은 시행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