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보다는 무려 20배 가까이 폭증
해외 기업, 전체 투자의 3분의 1…한국·대만·일본이 대부분
그랜홈 미 에너지부 장관 “지각판 이동”
최근 8개월간 글로벌 기업들이 미국 반도체와 청정기술 분야에 투자를 약속한 자금 규모가 260조 원을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 바이든 미국 정부가 ‘메이드 인 아메리카’를 기치로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담은 법안을 잇따라 통과시킨 영향으로, 미국이 글로벌 기업들을 거침없이 빨아들이는 분위기다.
16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글로벌 기업들이 미국에 돈 보따리를 싸들고 가고 있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 지원법(CHIPS)’이 발효된 지난해 8월 이후 반도체와 청정기술 분야 투자 규모가 14일 기준 2040억 달러(약 268조152억 원)에 달했다. 전체 투자의 3분의 1이 해외에 본사를 둔 기업들의 미국 투자로, 주로 한국·대만·일본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동안 성적과 비교하면 급증 속도는 확연히 두드러진다. 최근 8개월간 글로벌 기업들의 대미 투자 규모는 2021년 총합보다 두 배 늘었고, 2019년에 비해서는 무려 20배 가까이 폭증했다.
개별 프로젝트 규모도 차이가 크다. 투자액이 10억 달러가 넘는 프로젝트는 2019년 4개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8월 이후 31개로 늘었다. 최소 1억 달러 이상으로 범위를 넓히면 프로젝트 수는 75개를 넘어선다. 투자 증가에 따른 고용유발 효과도 기대된다. FT 분석 결과, 총 8만2000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추산됐다. 제니퍼 그랜홈 미국 에너지부 장관은 최근 미국 투자 급증을 언급하며 “지각판이 이동하고 있다”고까지 표현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글로벌 공급망 새판짜기와 미국 제조업 부활을 목표로 지난해 8월 IRA와 CHIPS를 잇따라 통과시키면서 글로벌 기업에 엄청난 보조금을 미끼로 제공했다. IRA는 청정기술 관련 부문에 3690억 달러 규모의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CHIPS에도 39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생산 지원금과 240억 달러에 달하는 세제 혜택이 담겨 있다.
컬렌 헨드릭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수석 연구원은 “(미국) 공급망 개발이 시속 제로에서 100마일(약 160㎞)로 빨라졌다고 보면 된다”며 “그동안 보지 못했던 엄청난 투자 규모”라고 평가했다.
미국 정부의 보조금 공세는 보호무역주의 논란을 촉발시키며 동맹국들의 반발을 불렀다. 자국 기업들이 보따리를 싸서 미국으로 떠나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IRA가 서방을 분열시킬 수 있다”고 날 선 반응을 보였다. 유럽연합(EU)은 보조금을 쫓아 미국행을 택하는 글로벌 기업들을 붙잡기 위해 지난달 자체 산업 전략을 공개, ‘쩐의 전쟁’에 가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