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기업 급증 투자 사이클 방해…위기-투자위축-부채증가 악순환
기업활동 위축땐 가계 전이 우려
“적극적인 유동성 공급으로 기업들의 도산 방지에는 성공했지만, 부작용으로 기업들의 부채가 증가하고 이자 상환도 힘든 좀비(=한계) 기업이 양산될 가능성이 커졌다.”(2020년 5월, 하이투자증권 ‘포스트 코로나 이슈’ 리포트)
3년 전의 경고가 현실이 됐다. 코로나19발 경기침체는 이전 침체국면과 달리 부채 조정과 대규모 기업구조조정이 없이 지나갔다. 오히려 각국의 강력한 통화 및 재정정책으로 정부와 기업의 부채가 빠르게 늘었다. 전세계가 시장에 뿌린 돈을 빠르게 거두면서 금리는 압축 상승했고, 인플레이션과 경기 둔화 우려는 심화했다.
과거 대부분의 경기 침체국면을 보면 기업들의 구조조정과 부채 축소 과정이 동반됐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 가계부채가 큰 폭으로 조정됐고 GM 및 일부 금융기관의 파산 및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IT 버블 당시인 2000년 초반도 기업부채 규모의 조정이 있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강력한 경기 충격에도 빚이 축소되기보다는 오히려 빚이 급속히 확대되는 첫 번째 사례가 되어가고 있다.
늘어난 부채와 한계기업은 시스템 위기의 방아쇠가 될 가능성이 있다. 기업부채 확대 그리고 좀비 기업의 급증은 경기회복에 큰 장애물일 수밖에 없다. 기업들의 부채 증가로 투자 사이클의 선순환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구조조정과 기업 부채 축소 → 공급부족 → 기업 투자 확대 → 경제성장 및 기업 매출 확대 → 기업 부채 축소’와 같은 레버리징 사이클은 사라지고 ‘성장 둔화 혹은 위기 발생 → 기업 부채 증가 → 기업 투자 위축 → 구조조정 지연 및 공급과잉 지속 → 경제성장 및 기업 매출 둔화 → 기업 부채 증가’와 같은 디레버리징 사이클의 악순환이 일어날 공산이 크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좀비 기업이 이슈화되고 있지만 빠른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좀비 기업들이 고용시장에서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좀비 기업들에 고용된 인력 규모가 220만 명에 이른다는 추측도 나온다. 미국의 총 고용인구가 1억6000만 명임을 고려할 때 작지 않은 규모다.
좀비 기업 문제는 미국과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적인 이슈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전 세계 기업부채 규모는 비약적으로 늘었다. 특히 금융위기 당시 국내총생산(GDP) 대비 50% 수준이던 이머징 기업부채 규모는 이미 100% 수준까지 증가했다. 국가별로 보더라도 대다수 국가의 기업부채가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는 양상이다.
기업활동이 위축되면 그 충격은 가계로 전이된다. 돈을 빌려준 은행도 어려움에 빠트릴 수 있다. 결국, 기업이 힘들어지면 주식시장도 타격을 받게 마련이다. 글로벌 자금이 위험자산인 국내 주식시장에서 빠져나가 해외 안전자산으로 이동하면서 증시를 떠받치는 유동성도 줄어든다. 하나증권에 따르면 국내 기업 이익사이클 악화시 외국인 순매도까지 겹칠 경우 코스피 월간 기대수익률 추정치는 평균 -2.9%였다. 이는 같은 조건에 외국인 순매수일 때 -0.3%보다 하락 폭이 더 크다.
실제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이 시작된 2021년 S&P500은 28.05% 상승했지만, 코스피는 3.63% 상승에 그쳤다. 2022년 금리 인상기에는 코스피는 24.89% 하락했지만, S&P500은 19.45% 빠지며 상대적으로 선방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는 지난해 네 차례의 자이언트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과 두 차례의 빅스텝(0.5%포인트 인상), 한 차례의 베이비스텝(0.25%포인트 인상)을 밟으며 긴축의 고삐를 당겼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업 부채 리스크가 부담스러운 것은 위기에 취약하다는 점이다”라며 “코로나19, 외환위기와 같은 대형 악재가 아니더라도 돌발 소형 악재에도 기업들이 쉽게 도산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