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의 아이디어·기술을 탈취한 대기업을 형사처벌하는 방향의 법제 강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중소기업 권리 회복을 지원하는 공익 재단법인 ‘경청’의 박희경 변호사는 어제 회견에서 “아이디어 탈취는 다른 부정경쟁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은데, 형사처벌 규정이 없다”라면서 부정경쟁방지법상 아이디어 및 성과물 침해 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 신설을 제안했다. 정부의 행정조사 시 아이디어 침해와 데이터 부정 사용으로 위법성이 인정되면 시정권고를 넘어 시정명령까지 내릴 수 있도록 실효성을 강화하자고도 했다.
대기업에 피해를 봤다는 알고케어와 프링커코리아, 키우소, 닥터다이어리, 팍스모네 등 5개 벤처기업 대표가 회견에 참석해 분쟁 현황을 설명했다. 경청과 벤처기업 대표들이 어제 주장한 각종 피해 사례가 사실인지, 현행 법제의 보호 대상인지 등은 관련 절차를 통해 가릴 일이다. 하지만 산업계 전반에 걸쳐 기술 탈취를 비롯한 부정경쟁행위가 난무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재무적으로 취약하고 법무적 대응 능력도 부족한 중소기업은 속수무책으로 손실을 보기 일쑤다. 그 손실이 치명적인 경우도 허다하다.
정지원 알고케어 대표는 회견에서 “대기업이 지식재산권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중소기업의 기술개발 의지를 꺾는 일이자 사회적 책임을 저버리는 처사”라고 했다. 홍성남 팍스모네 대표는 대통령 또는 국회 직속의 상설기구 설치, 손해배상 산정 기준 현실화 등을 요구했다. 어제 제기된 법제 강화 주장이 타당한지를 따지기에 앞서 기업들을 옥죄는 생태적 환경이 오죽 각박하면 국가형벌권 확대까지 요구하게 됐을지 돌아보게 된다.
기술 보호는 기업 규모와 관계없이 대한민국 산업계의 안정성과 경쟁력을 위협하는 뜨거운 감자다. 중소기업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국내만의 문제도 아니다. 국가정보원의 지난달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최근 5년 동안 적발된 산업 기술 국외 유출 사례가 93건에 달했다. 기업 추산 피해액만 25조 원이다. 감시의 눈을 피해 해외로 슬그머니 넘어갔을 첨단 기술까지 포함하면 국가적 손실이 얼마나 커질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이상한 것은 기술 사범을 중벌로 다스리는 미국, 독일, 일본 등과 달리 국내 법적 처벌은 10건 중 7건이 집행유예일 정도로 ‘솜방망이’ 수준이란 점이다. 기술을 해외로 빼돌린 매국적 범죄에 대해서도 법정 최고형은 징역 6년에 그친다. 최고 20년 형으로 대응하는 미국과는 판이하다. 국회와 당국이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실효성 있는 대응을 해야 한다. 중소기업들의 어제 호소만 귀담아들어도 길이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