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채무비율 증가 속도 가팔라…재정준칙 도입 필요“
윤석열 정부는 지난 정부의 선심성 재정 집행을 강하게 비난하며 재정 건전성을 강화하겠다는 정책 기조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번 정부에서도 나랏 빚은 계속해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문재인 정부 5년간 불어난 금액 못지 않은 규모의 나랏 빚이 더 쌓이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10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작년에는 국가채무가 1000조 원을 돌파했고, 올해에는 66조 원 넘게 더 늘어날 것으로 관측됐다.
이런 추세라면 윤석열 정부 임기 완료 시점인 2027년 국가채무가 1500조 원을 돌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기재부에 따르면 2022회계연도 국가결산 결과 지난해 중앙정부 채무와 지방정부 순채무(중앙정부에 대한 채무는 제외)를 합친 국가채무는 1067조7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전년도보다 97조 원 늘면서 국가채무가 1000조 원을 돌파한 것이다.
2017년 660조2000억 원이던 국가채무는 2018년 680조5000억 원, 2019년 723조2000억 원, 2020년 846조6000억 원, 2021년 970조7000억 원, 2022년 1067조7000억 원으로 눈덩이 처럼 불었다. 2017부터 작년까지 6년 간 국가채무가 407조 원이 늘어난 것은 문재인 정부 시절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지출 증가가 자리잡고 있다.
작년 말 국회에서 확정된 올해 예산상 국가채무는 1134조4000억 원이다. 올해 한 해 동안에도 국가채무가 66조7000억 원 늘어나는 것이다. 단순 계산으로 올해부터 윤석열 정부 임기(2027년 5월)가 끝나는 2027년까지 국가채무가 66조7000억 원 씩 늘어나면 국가채무는 1400조 원을 뛰어 넘게 된다.
작년 10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상훈 의원이 국회예산정책처에 의뢰해 추계한 '2022∼2070 국가채무 장기전망'에 따르면 국가채무가 2030년 1842조6000억 원, 2040년 2939조1000억 원, 2050년 4215조1000억 원으로 불어날 것으로 추산됐다. 이를 고려하면 2017년엔 국가채무 1500조 원 돌파도 배제할 수 없다. 작년 50% 안팎의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비율도 2030년 72.1%, 2040년 100.7%, 2050년 130.0%로 대폭 늘 것으로 예상됐다. 국가채무비율이 높아 질 수록 국가 신인도는 나빠지게 된다.
국제통화기금(IMF)는 한국의 국가 채무 비율이 예상보다 더 빠르게 늘어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지난달 IMF는 재정점검 보고서에서 작년 말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일반 정부 채무 비율을 54.3%로 추산했다. 이는 지난해 10월 제시한 54.1%보다 0.2%포인트(p) 늘어난 수치로, 우리 경제 규모에 대비해 채무 증가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다는 걸 의미한다. 전 세계 35개 선진국 가운데 한국을 제외하고 기축 통화를 사용하지 않는 10개국의 지난해 말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 비율 평균은 52%로 한국보다 낮았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재 국가채무 비율 자체는 그리 높지 않다고 보고 있는데 문제는 국가채무 증가 속도"라며 "증가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면 향후 국가채무 비율이 높은 레벨로 올라 갈수 있기 때문에 속도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윤석열 정부는 임기 동안 대대적인 지출 구조조정으로 씀씀이를 줄여 나라살림 적자와 국가채무 확대를 최소화하는 건전재정 기조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올해 1∼3월 국세 수입(87조1000억 원)은 경기 둔화 등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24조 원 줄어드는 등 세수 펑크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지출이 수입을 크게 웃돌면서 나라 살림 적자는 올해 1~2월 31조 원으로 전년보다 11조 원 늘었다. 재정적자가 늘면 적자분을 메우기 위한 국채 발행이 늘 수밖에 없고, 이는 국가채무 증가로 이어져 재정 건전성이 악화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대규모 재정사업 추진 여부를 결정하는 예비타당성(예타) 조사의 면제 기준을 24년 만에 완화하는 내용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현행 '총사업비 500억 원·국가재정지원 규모 300억 원 이상'에서 '총사업비 1000억 원·국가재정지원 규모 500억 원 이상'으로 확대하는 게 핵심 골자다. 재정 건전성을 지키기 위해 도입된 예타 조사 면제가 대폭 완화되면 경제성이 떨어지는 사업들이 남발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예산 투입으로 국가 재정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
그럼에도 여야는 재정 건전성 강화를 위한 재정준칙 법제화에는 무심한 상황이다. 윤석열 정부는 건전재정 확립을 위해 재정준칙 도입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지만 여야 논의는 진척이 없다.
재정준칙은 예산을 편성할 때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3.0% 이내로 유지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불요불급한 재정 지출을 차단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성태윤 교수는 "재정 건전성 강화를 위해선 예타 조사 면제 기준을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무엇보다도 재정준칙 도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