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로는 나에게 일정한 수입이 있고 이후 이 부채로 일정한 수입이 발생하도록 만들어놔야 한다. 김 회장은 아무리 좋은 투자라도 일정한 현금흐름이 보장되지 않으면 부채가 오히려 숨통을 막아 다 죽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한다.
마지막으로 투자에서 나오는 자기 자본 이익률(ROE)이 내 부채에서 발생하는 이자보다 높아야 한다. 투자 이익이 부채 이자보다 적다면 당연히 이 부채는 나쁜 부채가 된다고 말한다.
가계부채 리스크가 우리나라 경제의 숨통을 죄고 있다. 코로나19로 금리가 대폭 내리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내 집 마련과 ‘빚투(빚내서 투자)’ 에 올인한 결과다.
모두가 그렇진 않겠지만 일정한 수입도 없던 젊은 층이 과도한 부채를 레버리지 삼아 투자에 나섰고, 금리가 다시 오르면서 이자부담이 커졌다.
게다가 부동산과 주식 시장이 침체되면서 투자에서 나오는 이익률이 부채 이자보다도 못 미치게 된 형국이다. 그야말로 김승호 회장이 지적한 나쁜 부채의 조건은 다 대부분 갖추게 된 셈이다.
과도한 부채는 경제에 치명적이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가계신용 누증 리스크 분석 및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GDP대비 가계신용 비율이 80%를 상회하는 경우 경기침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는데, 지난해 4분기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이 비율은 105.1%에 달한다.
역시 한은이 국내외 금융전문가 7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절반 이상은 대내 리스크 요인으로 ‘가계의 높은 부채 수준 및 상환 부담 증가’(53.9%)를 꼽았다.
실제로 과도한 가계신용 누증은 소비 제약 등을 통해 중장기 성장흐름을 약화시키고, 위기발생 가능성을 증대시키는 등 경제 취약요인으로 작용한다.
대표적으로 1990년대 일본의 장기 불황이 있다. 일본경제는 1970년대부터 통화량 증가세가 지속되고 1980년대 들어서는 플라자 합의 등으로 적절한 거시정책 대응이 제약되면서 금융완화기조가 이어졌다. 그 결과, 가계 등 민간을 중심으로 과도한신용팽창과 자산 버블이 발생했다.
이후 부동산 및 주식가격이 고평가된 상황에서 정책금리가 인상되고 유동성이 축소됨에 따라 자산시장의 버블 붕괴가 벌어졌다.
주체는 다르지만, 2008년 전 세계를 강타했던 글로벌 금융위기는 글로벌 금융기관들이 과도한 부채를 짊어지고 투자를 했기에 벌어진 문제였다. 2011년 유럽 재정위기 역시 각국 정부가 과도한 부채를 보유한 데서 불거졌다.
사람들은 과거를 통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채 금리가 최근 20년간 꾸준히 하락세를 이어온 걸 본 사람들은 금리가 계속 내려오고, 향후 크게 치솟을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생각하면서 안심하고 대출을 받아서 집을 샀다.
그러나 미래는 알 수 없었다. 코로나로 돈이 시중이 불어났고, 전쟁 등 공급망 이슈가 불거지면서 40년 만의 고(高)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한은은 ‘빅스텝(한 번에 0.5%p 인상)’을 포함해 금리를 급격히 올렸다.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은 폭락했다.
경제학자 존 갤브레이스는 세상에는 ‘모르는 사람’과 ‘모르는 것을 모르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불확실한 예측을 통해 나쁜 부채를 끌어모으는 일은 피해야 한다. 가계는 물론, 국가 경제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
오죽하면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 3월 “부동산 대마불사(大馬不死), 부동산 투자는 꼭 성공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데, 고령화 등을 고려할 때 이 추세가 미래에도 계속될지는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