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면 걸리는 '점포폐쇄 규제'…금융당국 "내실화 강조" 기준 불분명

입력 2023-05-2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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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 "5월 이전에도 ATM기 이상 '대체수단' 마련" 당부했지만
지난달 5대 은행 폐쇄 점포 31곳 중 자동입출금기만 마련한 곳도
‘생활권’ 불명확ㆍ충당금 추가적립 요구에 폐쇄 늘어날 수도

▲2023년 4월 중 점포 폐쇄결정 및 폐쇄된 점포에 대한 대체수단. (은행연합회,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

금융당국이 이달부터 시행한 '은행 점포 폐쇄 내실화 방안'의 기준이 애매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폐쇄 대체 수단 기준이 불명확해 은행들의 점포 철수에 명분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22일 은행연합회가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5대 은행(KB국민ㆍ신한ㆍ하나ㆍ우리ㆍNH농협)에서 문을 닫은 점포 수는 31개로 나타났다. 국민은행이 24곳으로 제일 많았고 신한은행이 6곳, 농협은행이 1곳이었다.

문제는 점포 폐쇄 후 ‘대체 수단 마련’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사전영향평가 내실화 방안 발표를 통해 ‘은행 점포폐쇄 관련 공동절차’ 개정안을 이달 1일부터 시행했다. 다만, 당국은 5월 1일 이전에 점포폐쇄가 '결정'되거나 점포가 폐쇄되는 경우에도 대체점포 마련, 사후평가 실시 등 ‘내실화 방안’을 적용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4월 중 문을 닫은 지점에 대해 대체 점포 마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은행은 폐쇄 점포 24곳 중 21곳에 대해 ‘동일 생활권 내 자행점포’를 폐쇄 근거로 내세웠다. 나머지 3곳에 대해서는 우체국 창구업무 제휴, ATM기를 대안으로 마련했다.

‘동일 생활권 내 자행점포’란 ‘은행 점포폐쇄 관련 공동절차’에 포함돼 있는 대체 수단으로, 금융위가 인정하는 대안 중 하나다. 문제는 ‘동일 생활권’이라는 기준이 애매하다는 점이다. 은행연은 이번에 개정된 공동절차에 ‘동일 생활권’의 예시로 ‘통학구역’ 등을 추가했다. 특정 초·중·고등학교에 가도록 지정해둔 구역을 기준으로 점포 폐쇄를 결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개별 은행이 자율로 해당 지점이 있는 지역에 맞게 ‘동일 생활권’을 정의하기 때문에 기준은 명확하지 않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금융위 관계자는 “‘동일 생활권’이라는 게 애매하지만, 예컨대 2~3블록 정도 등 가까운 거리 내에 다른 점포가 있는 경우 대체할 수 있다는 의미”라며 “도서산간 지역에서는 대체수단으로 활용할 수 없고,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점포들이 있는 수도권에서 활용 가능하다고 본다”고 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 ‘동일 생활권 내 자행점포’는 가장 많은 은행들이 점포폐쇄의 대안으로 내놓고 있다. 그만큼 은행이 가장 쉽게 '대체수단'으로 삼아 점포를 폐쇄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은행권 고위관계자는 “은행은 ‘동일 생활권’을 넓게 보고 싶겠지만 고령자 입장에서는 당장 내 집 500미터 앞 점포가 사라지면 대단히 불편하다고 느낄 것”이라며 “소비자 불편, 금융접근성 보장을 기준으로 ‘생활권’을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4월 폐쇄 점포에 대한 대체수단이 미흡한 경우도 있었다. 신한은행은 폐쇄 점포 1곳에 대한 대체수단으로 현금 자동 입출금기(ATM)만을 마련했다. 또 다른 점포 1곳에 대해서는 ATM과 고기능무인자동화기기(STM)를 대책으로 내놨다. 이는 현실적으로 ATM과 STM이 은행 입장에서 가장 현실적인 대체수단이기 때문이다.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은 "공동점포는 은행들 간 니즈가 맞아 떨어져야 하기 때문에 활성화가 어렵다"며 "고령층에게는 한계가 있겠지만, 공급자 입장에서 두 방안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했다.

문제는 4월 금융위가 ATM이 은행의 창구업무를 온전히 대체할 수 없으므로 점포폐쇄에 따른 대체수단으로는 앞으로 활용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는 점이다. 금융위는 STM에 대해서도 금융소비자가 겪게 되는 불편, 피해의 정도가 크지 않은 등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활용할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이에 신한은행 관계자는 "거래 빈도에 따라 인근에 있는 우체국 제휴창구, 디지털 라운지(화상상담기기) 등이 기존 지점의 역할을 대체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동안 은행들은 점포 폐쇄를 통해 고정비용을 절감해왔다. 온라인 금융거래 수요가 늘며 수익성이 떨어지는 점포 수가 증가하면서다. 하반기 금융당국이 추가 자본 적립의무 도입에 나설 예정인 만큼 은행권은 수익성이 없는 점포 폐쇄를 통한 비용 절감이 절실해지는 상황이다. 즉, 금융당국의 속도 조절 압박에도 실효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반면, 금융당국은 현재 은행권이 점포 폐쇄 속도를 줄이기 위한 '내실화 방안'을 순차적으로 준비 중이라는 입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은행별 소비자보호 전담부서가 점포 폐쇄 이후 금융소비자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사후평가’는 11월 1일부터 실시할 예정이며, 현재 은행별로 절차를 마련하는 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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