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엠알케이’…그 시절 러브장·우정장 치트키 [요즘, 이거]

입력 2023-05-30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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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애 디자이너 mnbgn@)


2000년대 초, 20일께만 되면 문구·팬시점과 서점에 쏟아지던 문의전화들.
“들어왔나요?”

팬시 잡지 ‘Mr.K’ 미스터케이 혹자는 알파벳을 그대로 읽어 엠알케이라고 불렀던 그 잡지의 입고 소식을 묻는 전화였는데요. 이번 호에는 어떤 연예인의 인터뷰가 실릴지, 또 어떤 편선지로 놀라움을 줄지에 대한 기대감이 가득했었죠.

추억 속에 차츰 잊혀가며 종종 중고 커뮤니티에 얼굴을 비치는 정도였는데요. 그런데 이 잡지가 새롭게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텀블벅’ 펀딩으로 말입니다.


(김다애 디자이너 mnbgn@)


엠알케이(미스터케이)는 1998년 5월 창간한 잡지입니다. 독자들의 뜨거운 호응 속에 월간지로 큰 성공을 거뒀는데요. 제도권 간행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2000년 8월 발행부수 20만 부를 돌파하고 2001년 8월에는 30만 부, 2002년 12월에는 40만 부를 넘기며, ABC제도 공인 국내 잡지 발행부수 기준 2위를 기록하기도 했죠.

초반에는 내부 캐릭터들을 알리는 홍보용, 혹은 사보 형태의 매체였는데요. ‘우주최초 잡지편선지’라는 슬로건 아래 1000~2500원 사이의 가격으로 판매됐습니다. 당시 학생들에게 어찌 보면 가격대가 있음에도 저렴하다고 느낄 수 있는 풍부한 구성으로 인기를 끌었죠.

당시 1세대 아이돌 그룹이 저마다의 강력한 팬덤을 보유하던 때였기에, 엠알케이의 초반 주력분야도 타 매체와 마찬가지로 아이돌 관련 소식과 인터뷰였는데요. 이들의 사진과 소식뿐 아니라 매체 네이밍이 높아지며 인터뷰와 연예인 관련 팬시 제품까지 다양해졌습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멈췄다면, 엠알케이는 없었겠죠. 엠알케이하면 떠오르는 그것 ‘편선지’의 등장입니다.


(김다애 디자이너 mnbgn@)


본래 내부 캐릭터 팬시 제품 홍보를 위했던 잡지이니만큼 아이돌 사진과 정보 곳곳에 엠알케이만의 캐릭터들을 등장시켰는데요. 귀엽고 또 귀여운 콩콩이, 코딱지, 소다미 같은 캐릭터들은 ‘오빠’를 보러왔다가 ‘캐릭터’에 빠지게 했죠.

이 캐릭터들에 흠뻑 빠질 때쯤, 엠알케이는 이들을 다르게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을 편선지에 등장시킨 거죠. 당시 잡지의 반 이상을 차지했던 편선지는 정말 뜨거운 화제였는데요. 그 인기만큼이나 퀄리티도 높아져, 후에는 완성작을 두고 진짜 ‘상품’인지 헷갈리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단순히 캐릭터를 홍보하는 캐릭터 편선지에서 점점 실생활의 아이템을 가져온 아이디어 편선지, 패러디의 진수를 보여준 패러디 편선지, 입체 편선지 등 다양한 형태로 편선지를 선보였는데요.

사진기를 패러디한 ‘코딱지 사진기 편선지’ 하루에 3번 쓰는 콩순이 ‘이빨 딱어 치약 편선지’, 한약 봉지 속 우정을 담은 ‘우정한약 편선지’, 다양한 패러디 과자가 모인 ‘과자 세트 편선지’ 등등 정말 생각지도 못한 패러디물 편선지가 쏟아졌죠.

이번 달에는 과연 어떤 내용이 담길지 뜯어보는 재미가 쏠쏠했는데요.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소녀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심리테스트’도 수록됐죠. 그 심리의 미묘함이란 현재도 혈액형과 애니어그램을 거쳐 MBTI로 점철된 상태인데요. 친구들과 썸남의 그 행동이 궁금한 건 예나 지금이나 비슷했었던 것 같네요.


(김다애 디자이너 mnbgn@)


편선지 또한 ‘우정’과 ‘사랑’을 강조한 패러디가 많았는데요. ‘○월분 사랑급여명세서’라는 내용으로 애정, 선물, 성실, 표현력, 봉사 등이 지급되어야 했습니다. 공제 사항에는 거짓말, 연락두절, 관심도가 매겨진 매우 상세한 표지도 눈에 띄는데요. 차감된 사랑 총액의 숫자를 적으면서 나에 대한 애정도에 대한 ‘경고’와 ‘칭찬’을 매기기도 했죠.

이런 기류를 타고 엠알케이는 당시 학생들의 인기 작품(?)이었던 우정장과 러브장의 단골이 됐는데요. 교환 일기의 한 종류였던 이 우정장과 러브장은 내부에 각종 편지지와 문구, 스티커, 그림 등으로 다양하게 꾸며졌죠. 특히 지금 보면 손발이 오그라들다 못해 없어질 지경의 ‘저세상 흑역사 감성’이 가득한데요.

종이를 잔뜩 구기고선 “구겨진 건 종이가 아닙니다. 당신을 향한 나의 자존심입니다”라는 입이 떡 벌어질 명언부터, ‘세상에는 초코우유도 있고 딸기 우유도 있고 바나나 우유도 있지만, 당신에게 주고 싶은 우유는 아이러브우유’라는 (타자를 치는 지금 순간에도 멈칫거려지는) 엄청난 드립이 넘쳐납니다.

당시 능력자들의 엄청난 그림 솜씨와 예쁜 글씨체는 우정장과 러브장 작성자들의 엄청난 부러움을 샀는데요. 엠알케이 편선지는 이런 ‘재능’을 커버해줄 수 있는 엄청난 치트키였던 셈이죠.

소녀들의 무한 사랑에도 불구, 이메일과 휴대폰, 메신저의 시대가 찾아오며 편지를 주고받는 감성은 밀려나게 됐는데요. 엠알케이도 이런 기류를 이겨내지 못하고 2007년 휴간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여 또 다른 레트로 감성 ‘돌아온 엠알케이’가 텀블벅 펀딩 소식을 알렸는데요. 이제 레트로 감성이 80~90년대를 지나 2000년대 초까지 넘어왔다는 사실도 놀랍습니다.


(김다애 디자이너 mnbgn@)


옛 감성이라기엔 ‘꾸미기’엔 지금도 진심인데요. 식을 줄을 모르는 ‘다꾸(다이어리 꾸미기)’ 인기만 봐도 알 수 있죠. 만들고 그리고 쓰고 붙이는 이 단순하고도 힐링되는 작업에 진심인 이들에게 엠알케이의 부활은 그저 축복인데요.

이번에 돌아오는 엠알케이는 원래의 정보지 형태는 아닙니다. ‘편선지 사전’을 콘셉트로, 엠알케이가 기존에 발행했던 독특한 아이디어의 편선지 가운데 일부를 4권 세트로 탄생시켰는데요. 지금까지 없었던 ‘한정판 편선지사전’이라 불리죠. 최근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에서 라떼 고인물 아이템으로 각광받던 엠알케이의 편지지의 결정판이라는 설명인데요. ‘The Dictionary Of MRK ULTRA LETTER(엠알케이 울트라편지)’로 판매되고요. 펀딩은 31일부터 시작됩니다.

1998년 창간호부터 2007년 마지막호까지 미스터케이 잡지에서 선보인 편선지를 정리하고, 일부는 수정한 최종 디자인으로 정리했는데요. 여기에 당시에 인기였던 심리 테스트까지 더해졌습니다.

현재 이 4개 세트는 20% 할인된 가격이 4만4000원으로 구성됐고, 여기에 책 박스와 굿즈를 포함한 5만9000원대의 상품도 준비됐습니다.

2000원짜리 편선지의 엄청난 몸값 상승이 아닐 수 없는데요. 하지만 우리는 이제 꼬깃꼬깃 용돈을 모아 한 권을 샀던 어린이가 아닌 어른이가 되었으니깐요. 그 시절 편선지를 ‘몽땅’ 결제하는 오늘날의 어른이는 하루빨리 배송 날을 기다릴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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