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부 차장
#장면1 2014년 1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 당시 한국도로공사는 경상북도 김천으로 본사를 옮겼지만 연구개발(R&D) 본부는 경기도 화성시에 그대로 남았다. R&D 우수 인력이 지방으로 가면 대거 이탈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장면2 2008년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당시 보건복지가족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으로 국정감사 기간 한미약품 기흥연구소를 방문했다. 박 전 대통령은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에게 자신의 지역구인 대구에 연구소 신설을 건의했다. 그러나 임 회장은 기흥이 마지노선이라며 더 내려가면 인재들이 모이지 않는다고 했다.
#장면3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 27개 연구원 중 22개는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퇴사자가 늘어날 뿐 아니라 우수 인력 채용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15년부터 4년간 그만둔 연구원은 985명으로 전체 연구직(4600명)의 21.4%에 달했다.
도로공사의 R&D본부, 한미약품 기흥연구소는 공교롭게도 둘 다 경기도 화성시에 있다. 쉽게 얘기하면 경기도 화성시가 R&D 인력의 마지노선이라고 볼 수 있다. 정부 방침에 지방으로 이전한 국책연구원 우수인재들은 다섯 명 중 한 명이 자리를 떠났다.
정부의 정책을 보면 이런 현실을 못 본 척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면 알면서도 표를 얻기 위해 모르는 척하거나.
정부가 5월 31일 발표한 첨단산업 글로벌 클러스터 육성 방안이 대표적이다. 보도자료에는 8개 주요 지자체의 클러스터 리노베이션 구상(안)이 포함됐는데 수도권인 홍릉, 판교, 송도를 제외하면 충북 오송, 대구, 대전 대덕, 부산, 광주 등 5개의 지자체가 지방이었다.
첨단산업 글로벌 클러스터 육성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박사급 우수인재가 필요하다는 것은 두 번 말하면 잔소리다.
정부는 이번 방안에 그동안의 클러스터 정책을 평가하면서 클러스터 내 자생적 우수인력 공급 생태계가 미흡했다고 자평했다. 그러면서 젊은 우수 인재의 지역근무 기피 현상이 심화되고 있음에도 주거‧문화시설 확충 등 지자체의 정주여건 개선 노력이 미흡했다고 분석했다. 아주 잘 지적했다.
그런데도 대책은 기존 정책을 되풀이했다. 주거·문화·교통 세 가지 분야로 대책을 제시했는데 우선 주거는 클러스터 내 일자리연계형 주택 등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고 지자체 주도로 인근 도시개발사업과 연계해 확충하겠다고 밝혔다.
문화는 신규 클러스터 설계 과정에 도시설계·공공디자인 전문가를 참여시켜 클러스터만의 특색있는 볼거리·놀거리·먹거리 명소를 조성하겠다고 했다. 교통은 고객 요청에 따라 운행경로, 운행시간 등을 탄력적으로 운행하는 수요응답형 교통서비스(DRT)를 지역 클러스터까지 확대하겠다고 한다.
현재 세종특별자치시에 사는 필자로서 이런 대책은 허무맹랑할 수밖에 없다. 국책사업으로 만든 신도시도 건설 후 10년이 넘었지만 특색있는 볼거리·놀거리·먹거리 명소가 없는데 지방에 무슨 수로 만든다는 자신감일까. 무엇보다 문화는 정부 의지로 만들 수 없다.
이런 문제점에도 첨단산업 클러스터를 지방에 만들려는 의지 자체는 박수받아 마땅하다. 균형발전 차원에서도 수도권 집중을 막는 방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지금까지의 균형발전 정책은 지방의 소멸을 막지 못했다. 280조 원을 투입했지만,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저출산도 마찬가지다.
최근 한 지자체가 부실한 축제 관리로 논란을 빚었다. 이 지자체의 전체 인구가 6만 명인데 6만에 육박하는 인파가 몰리면서 부족한 인프라로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일회성이라도 눈길을 끌려는 지방의 현실인 것 같아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