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밀착’ 공급망, 경제·안보 울타리 역할....‘중국 의존’은 모순 [대만 경제 빛과 그림자]

입력 2023-06-19 05:00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글로벌 공급망서 대만 존재감 커
아이폰 구성 1500개의 부품 중 23% 대만 업체가 공급
“전시 유사 상황 발생하면 2조 달러 이상 경제 활동 위험”
대만, 중국 경제적 의존도 높은 것은 모순

대만은 최첨단 반도체 생산국으로 알려져 있지만 인쇄회로 기판(PCB)에서부터 고성능 렌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요 전자기기 부품 생산국이기도 하다. 최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대만이 미국 빅테크를 비롯해 서방 기업들의 공급망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되다 보니 서방 국가들이 거리두기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닛케이는 “글로벌 공급망에서의 대만의 이 같은 존재감은 대만 자국 경제를 뒷받침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국가 안보까지 봐주는 뒷배 역할까지 한다”며 “서방이 대만과의 관계를 끊을 경우 자국 제조업은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닛케이에 따르면 애플의 주력 상품인 아이폰을 구성하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스피커 등 1500개의 부품을 다루는 공급업체 중 23%가 대만에 있다. 반면 미국은 18%, 한국은 7% 정도에 그친다. 중국도 아이폰 부품 공급업체의 26%를 차지하고 있지만, 중국이 담당하는 부품 대부분은 기술력이 필요치 않는 부품들이다.

특히 아이폰에 들어가는 프로세서와 5G 모뎀, 와이파이(Wi-Fi) 칩, 고성능 렌즈 등 부가가치가 높은 부품 상당수가 대만산 제품이다.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아이폰 1대당 원재료비의 36%에 해당하는 약 200달러(약 26만 원)어치의 부품을 대만 공급업체가 공급하고 있는 셈이다. 참고로 아이폰은 2007년 출시 이후 총 24억 대가량이 판매돼 15년간 1조 달러의 매출액을 올렸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에 따르면 대만에서 위탁 생산되고 있는 반도체 생산에 문제가 일어났을 경우, 대만 공급업체에 의존하고 있는 기업들의 매출이 총 5000억 달러 가까이 감소할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 컨설팅 회사 로디움그룹은 대만에 전시 유사 상황이 발생할 경우 2조 달러 이상의 경제 활동이 위험에 노출된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마크 리우 TSMC 회장이 지난달 22일(현지시간) 반도체 장비 업체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가 개최한 미국 캘리포니아주 서니베일에서 반도체 연구·개발(R&D) 서밋에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서니베일(미국)/로이터연합뉴스
대만의 ‘서방 밀착형’ 공급망 경제 구조에도 최근 모순이 지적되고 있다. 바로 미국·중국과의 3자 의존성이다. 대만은 중국과 외교적으로 긴장 관계에 놓여 있지만, 산업·경제 측면에서는 상호 의존도가 높다. 닛케이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대만 무역총액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30%로 2017년 대비 1.5배로 확대됐다. 주요 전자기기 부품 생산을 담당한 대만 공급업체 대부분이 중국 본토에 조립 등 생산 거점을 두고 있다는 점도 단적인 예다.

문제는 미·중 갈등이 계속 부각되면서 대만 공급업체들이 운영 중인 중국 본토 생산 거점이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눈엣가시가 되는 것이다. 지난달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G7은 핵심 공급망에서의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줄이는 것에 뜻을 모으며 중국 견제에 나섰다. 이에 15년 넘게 이어져 온 미-중-대만 3각 상호의존 경제구조가 난관에 부딪히게 됐다고 닛케이는 지적했다.

대만 기업들도 이러한 분위기를 의식해 미국으로 눈을 돌려 ‘메이드 인 USA’ 생산 거점 구축에 나섰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TSMC가 2024년 이후 최첨단 반도체 생산 일부를 미국으로 옮길 계획을 밝힌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TSMC는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슈퍼컴퓨터나 스마트폰, 자동차, 전투기, 군사 기기에 사용할 수 있는 최첨단 3나노(nm·nm은 10억 분의 1m) 반도체를 생산할 예정이다. 하지만 TSMC가 ‘메이드 인 USA’를 추진하는 프로세서는 전자 제품 공급망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제품 본체 조립 등 대부분은 여전히 중국 의존도가 높다.

다만 공급망에서 대만의 위치는 견고하다고 닛케이는 거듭 강조했다. 미·중 갈등 심화를 우려해 애플을 비롯한 빅테크 기업들이 중국은 물론 대만을 벗어나 인도와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생산 거점을 서서히 옮기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수많은 글로벌 기업이 그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수출입 환경, 효율성, 저비용 구조에 맞춰 생산 전략에서 대만과 중국을 중심에 뒀는데, 동남아 지역으로 생산거점을 바꾸면 물류비용 등 추가 비용이나 변수가 발생할 수 있다.

닛케이는 “탈중국의 대가도 가볍지 않지만, 대만과의 관계를 끊으면 비용은 한층 커지게 된다”면서 “누군가는 그 비용을 부담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