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알래스카 원유 유출 사건. 22만 톤의 원유를 싣고 가던 미국의 대형 유조선이 암초에 부딪혀 해안에 4만 톤의 원유가 유출된 사고로, 엄청난 환경 피해를 유발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였다. UNEP(유엔환경계획)의 주도하에 전세계 차원에서 재발 방지 논의를 시작하면서, 1997년 10월 미국 보스턴에서 국제공시 표준기준인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를 설립하며 ESG 공시 논의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이후 더욱 확대된다. 환경오염 주범에 원유만 있을 리 없다. 2000년에 탄소정보공개 프로젝트가 추가되고, 2007년에는 공시 범위가 ‘기후’로 확대된다. 2010년에는 영국 왕실 주도로 미국 GRI와 힘을 합쳐 국제통합보고위원회(International Integrated Reporting Committee, IIRC)를 설립하면서, 세계는 ESG 공시 시대를 맞이한다.
하지만, 현실은 보고서보다 더 똑똑하고 복잡했다. 지속가능성 주제를 모두 다룬다는 면에서는 의미가 컸지만, 산업별로 심각하거나 중요한 이슈들은 너무나 달랐고, 정작 이를 준수해야 하는 기업과 투자자 사이에 그 효과가 의문시되었다. 2011년, 미국이 문제 해결에 앞장서서 지속가능회계기준위원회(Sustainability Accounting Standard Board, SASB)를 설립했다. 10여 년에 걸친 글로벌 ESG 공시 체계라는 거대한 건축물의 구조와 틀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준비를 마친 지구촌은 2010년대에 들어서며 본격적인 ESG 공시 운영에 진입한다.
2016년, GRI는 가이드라인을 통합하며 현재까지 가장 많이 사용하는 GRI 스탠더드를 발표한다. 공시가 통합되어야 개별 기업들의 지속가능실적들을 서로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 간 공시가 ‘상호 비교’될 때 취약한 부분을 파악하고 개선방향을 모색할 것이다. 이때 실질적인 ‘사회적 성과’를 직접 창출할 수 있다. 통합 공시와 비교가능성은 지속가능성 공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근간이다.
2017년 TCFD(Taskforce on Climate related Financial Disclosure)를 계기로 ESG 경영은 외부 공시뿐 아니라 회사에 내재화될 수 있는 수준으로 대폭 업그레이드 된다. 특히 온실가스 배출과 같은 비재무 정보 공개를 넘어 이와 관련된 ‘재무 사항’이 강조된다는 점, 개별 부서만의 관심사가 아닌 ‘실행력 있는 조직’를 요구한다는 점, 이를 위해 결과 취합만이 아닌 체계적인 ‘전략’을 세우고 ‘위험관리’와 연계시켜야 한다는 점, 전략은 목표로 구체화되기 마련이므로, 기후대응 전략의 ‘목표, KPI 지표와 성과’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혁신적이다.
문제는 이렇게 잘 정비되어 온 공시가 과연 얼마나 믿을 만하고, 얼마나 많은 기업들이 참가할지에 달려있다. 바로, 워싱과 공시 의무화, 2020년대 지속가능경영공시의 새 화두는 이렇게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