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내려라" 당국 압박에 시장논리 무시된 시장금리…혼란한 금융소비자

입력 2023-07-0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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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어지는 경제의 정치화③ 탐욕 억제책인가, 新관치인가]

"은행 금리인상 자제, 부담 줄여야"
당국 발언에 예금·대출금리 하락
불황 장기화 가계대출 수요 늘어
은행·차주 양쪽 다 불확실성 커져

(그래픽=손미경 기자 sssmk@)

“금리 상승기에 은행이 시장금리 수준, 차주 신용도 등에 비춰 대출 금리를 과도하게 올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1월 임원회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발언)

올해 정부의 규제 정책과 관치 논란의 중심에 있던 업권 중 하나가 은행이다. 연초 은행의 이자장사 논란과 윤석열 대통령의 ‘은행은 공공재’라는 발언이 맞물리면서 금융사, 특히 은행에 공적 역할을 강조하는 당국 수장들의 발언이 수차례 쏟아졌다. 예금과 대출금리 차이는 물론 배당, 영업점 폐쇄 정책 등부터 청년도약계좌 금리까지 은행 경영 전략에 정부가 적극 개입했다. 금융 소비자에게는 당장 혜택으로 이어지는 것들도 있었지만 시장 논리를 무시한 정책은 금융시스템의 불안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준금리인 정책금리와 정기예금·대출 등 시장금리가 엇박자를 내고 있다. 기준금리는 지난해 4월 1.5%에서 올해 1월 기준 3.5%로 2.0%포인트(p) 상승했다. 이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2월과 4월, 5월 세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기준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한 지난해 예금은행의 저축성수신 평균금리도 덩달아 올랐다. 기준금리 상승에 따른 영향이 시장금리에 반영되면서 지난해 4월 연 1.87%였던 저축성수신 평균금리는 같은 해 11월 연 4.29%까지 치솟았다. 시장 논리에 따라 기준금리와 시장금리가 나란히 상승세를 이어간 셈이다.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가파른 금리 상승에 따라 차주들의 이자 부담이 커진다는 점을 고려해 금융당국이 시장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해 11월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은행권에 “금융권의 과도한 자금 확보 경쟁은 금융시장 안정에 교란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업권 내 과당경쟁(같은 업종의 기업 사이에서 자유 경쟁을 넘어 손해를 보면서까지 지나치게 하는 경쟁)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복현 금감원장 역시 금리 인상을 자제할 것을 당부하며 압박했다.

시장금리도 서서히 정책금리와 엇박자를 보이기 시작했다. 1월 기준금리가 인상됐고 이후 세 차례 동결됐지만, 시장금리는 점차 하락세로 돌아섰다. 예금은행 저축성수신 평균금리도 1월 연 3.83%, 2월 3.54%, 4월 3.43%까지 떨어지다 5월 3.56%로 소폭 상승했다.

금융당국의 압박이 시장금리에 반영되면서 시장 논리를 무너뜨린 것이다. 심지어 4월 연 3.43%는 기준금리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예금금리가 기준금리보다 낮아지면서 금융소비자의 불안감은 고조됐다.

금융당국의 개입이 대출금리를 인하시켜 차주들의 이자 부담을 낮추기 위함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성과는 있었다. 하지만 예금금리 하락 폭에 비해 대출금리 하락 폭이 비교적 작다는 점은 금융소비자를 더 혼란하게 하는 요인이 됐다.

대출금리 하락은 여전히 경제 불확실성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급한 불을 끄기 위한 차주들이 늘어 가계대출 수요 증가의 문제를 낳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5월 말 기준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1056조4000억 원으로, 전월 대비 4조2000억 원 늘었다. 이런 증가 폭은 2021년 10월(5조2000억 원 증가) 이후 19개월 만에 최대 수준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정책 모기지와 일반개별 주택담보대출 금리 인하 등 영향으로 가계대출이 2개월째 증가 추세”라고 설명했다.또 “기준금리 인상이나 은행채 금리 상승 등 분명한 금리 인상 요인이 있는데도 금융당국의 압박에 은행들이 ‘상생금융’을 앞세워 금리를 낮추는 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본다”며 “시장 논리에 맡기지 않고 금융당국이 지금처럼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면 금융소비자들은 언제 예금을 맡기고 대출을 받아야 유리할지도 선택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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