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차 제조분야 벤처기업 A사는 복수의결권 제도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누적 투자금액이 50억 원 수준인 상황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해질 투자금액 요건의 향방을 지켜보고 있다. 지금까지 받은 투자금액보다 기준이 높게 세워지면 A 사의 고민은 무용지물이 된다.
6일 벤처기업계에 따르면 복수의결권 제도가 올해 11월 도입되지만, 제도의 연착륙을 위해서는 실효성 있는 투자금액 기준 마련 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복수의결권 주식은 상법상 1주 1의결권의 특례로써 하나의 주식에 2개 이상 10개 이하의 의결권이 부여된 주식이다.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안은 복수의결권 주식을 발행하려는 벤처기업이 창업 이후 일정 금액 이상의 투자를 받아야 하고, 가장 나중에 받은 투자금액도 일정 금액을 넘겨야 한다고 규정했다. 금액 기준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업계는 이 기준이 높으면 복수의결권 제도를 활용할 수 있는 기업이 많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창업부터 받아야 하는 최소 투자금액이 생기는 건데,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이 부분부터 허들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중소벤처기업부 벤처기업 정밀실태조사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벤처기업 3만7686개 중 성숙기에 들어선 기업 비중은 23.4% 수준이다. 나머지 기업들은 복수의결권 제도가 시행되더라도 주식을 발행하지 못하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업계는 발행을 위한 지분 기준도 이미 복잡한 상태라고 본다. 복수의결권주식 발행요건은 마지막 투자로 인해 창업주 지분이 30% 이하로 떨어져야 한다고 규정한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벤처기업의 창업자 평균 지분율은 68.8% 수준이다. 창업주의 의결권이 위협받고 있다는 기준이 상당히 까다롭게 설정됐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한 벤처기업 대표는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스타트업들의 적정 투자금액이나 평균 투자금액 등을 잘 산출하고, 해외 기준 등과 비교해서 적용해야 할 것”이라며 “또 스타트업들이 제조업, 서비스업 등 사업 영역이나 가치에 따라 투자금액이 달라 다양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최수정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본부장은 “도입 취지에 맞게 투자금액 규정들을 조금 낮춰야지, 너무 높은 경우에는 실질상으로 현장에서 제도를 활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어렵게 도입된 만큼 잘 활성화되고 운영될 수 있도록 뜻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투자금액 기준이 낮게 설정될 경우 복수의결권 제도가 남용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일정 투자를 받았다는 것은 해당 기업이 성장 가능성을 품고 실질적인 역량을 갖췄다는 근거로도 볼 수 있는데, 이 기준을 낮추면 악용될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는 시각이다.
복수의결권 제도가 도입되더라도 의사결정 과정에서 투자자와 계약상 동의가 우선될 수 있다는 부분도 실효성을 낮출 수 있는 요소로 지적된다. 통상 투자계약서는 정관변경이나 합병, 분할, 사업확장, 후속 투자 유치 시 투자자의 사전 서면 동의를 받도록 한다. 복수의결권 주식 발행을 통해 의결권 지분율을 높여도 중요 결정은 투자자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창업주와 투자자가 동반자적 관점에서 법적인 해결보다는 상호 이해를 통해 풀어가야 할 과제로 꼽힌다.
중소벤처기업부는 복수의결권주식 발행을 위한 투자유치 요건, 벤처기업의 보고 절차 등 공개와 관련된 세부사항, 신고 및 직권조사, 과태료 부과 기준 등이 담길 하위법령 개정 작업을 진행 중이다. 9월경 입법예고를 거쳐 모법과 같은 11월 17일 시행될 수 있도록 할 전망이다. 정부는 개정 과정에서 투자금액 기준 등을 현실화할 수 있도록 벤처기업협회, 한국벤처캐피탈협회 등 업계의 의견을 청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