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 기준 호우 사망자는 40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이날 오전 충북 오송 궁평 지하차도 침수 사고 현장에서 사망자 시신 1구가 추가로 수습되면서 직전 집계인 오전 6시보다 1명 늘어난 건데요. 이로써 오송 지하차도 사고 사망자만 13명이 됐습니다. 실종자는 경북 8명, 부산 1명 등 9명으로 집계됐죠.
2020년 54일간의 최장 장마 기록을 세웠을 때의 호우·태풍 사망·실종자 수(46명)를 일찌감치 넘었는데요. 2011년 호우·태풍으로 서울 서초구 우면산 산사태 등이 일어나 78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된 이후 최대 규모로 볼 수 있습니다. 소방당국과 군경, 지자체 등 재난당국은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고 발생 직후부터 실종자 구조작업을 벌였는데요. 이 사고를 비롯한 추가 피해 집계에 따라 사망·실종자는 더 늘어날 전망입니다.
이 밖에도 주택 침수, 산사태 등이 발생해 다수의 사상자와 이재민을 낳고 있습니다. 이는 13일부터 충청과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탓입니다. 청양에는 600㎜에 육박하는 폭우가 쏟아졌고, 공주·익산에도 500㎜가 훌쩍 넘는 비가 내렸습니다. 문경과 전북 익산도 500㎜ 안팎의 누적 강수량을 기록하고 있죠. 7, 8월 두 달간 내릴 비가 불과 닷새 사이에 쏟아진 겁니다.
폭우가 이어지면서 토양 함수량도 과도하게 높아졌습니다. 비가 끊임없이 내리면서 결국 땅속에 있는 물도 포화 상태에 접어들었고, 이는 산사태와 홍수로 이어지고 있죠.
여름철이면 으레 장마가 찾아오곤 하지만, 이번 장마는 조금 다른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속출한 호우 피해의 원인이 최근 심화한 ‘기후 변화’라는 주장도 나오는데요. 이번 장마의 특이점은 무엇인지, 또 피해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살펴봤습니다.
이번 장마에서는 ‘극한호우’라는, 조금은 생소한 용어도 등장했습니다.
극한호우는 기상청이 긴급재난문자 발송 기준(‘1시간에 50㎜’와 ‘3시간에 90㎜’를 동시에 충족할 경우)을 설명하면서 사용한 용어인데요. 단순히 강수량 총량이 많은 게 아니라 ‘매우 짧은 시간에 특정 지역에 집중되는 극단적인 비’가 쏟아질 때를 일컫습니다. 보통 1시간 강수량이 30㎜를 넘으면 ‘집중호우’라고 부르죠.
전통적인 장마와 다른 점도 이 부분입니다. 보통 남부지방에서 6월 중순, 서울 등 중부지방에선 6월 말에 시작하던 장마는 한 달가량 지속되다가 7월 말에 끝났습니다. 비구름도 장맛비를 쏟아붓고 위아래로 이동하곤 했죠.
하지만 이번 비는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퍼붓고 있습니다. 특정 지역에서만 이틀, 사흘씩 비가 이어졌는데요. 이렇게 거센 비가 누적되면서 더 큰 피해를 낳았다는 지적입니다.
이런 극한호우는 한반도 북쪽에 자리한 저기압 뒤에서 부는 차고 건조한 공기와 북태평양고기압 가장자리를 타고 부는 따뜻하고 습한 공기가 강하게 충돌하면서 비구름대를 발달시켰기 때문입니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건조한 공기가 습한 공기 밑을 파고들면서 습한 공기가 급상승했고, 이에 비구름대가 높은 고도까지 만들어졌는데요. 많은 양의 수증기는 기후 변화로 최근 해수면 온도가 이례적으로 상승한 게 영향을 줬습니다.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아지는 엘니뇨는 수증기 증발량을 높이면서 집중호우를 부른다는 특징이 있는데, 실로 세계기상기구(WMO)는 현재 엘니뇨가 발달하는 상태로, 7~9월 엘니뇨가 발생할 확률이 무려 90%나 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여기에 지구 평균 온도도 인류의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죠. 물폭탄을 퍼붓기 좋은 환경이 조성된 셈입니다.
기후 변화로 극한호우는 앞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극한호우 기준에 부합하는 비는 2013년 48건에서 2017년 88건, 2020년 117건, 지난해 108건 등 연평균 8.5%씩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호우 강도도 더욱 세질 것으로 전망되는데요. 기상청은 온실가스 배출량에 따라 이번 세기 후반기(2081~2100년) 연 강수량은 3~18% 증가하고. 강수일은 5.6~6일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더 많은 비가 더 적은 날에 온다는 것으로, 집중호우 횟수가 늘어난다는 뜻이죠.
극한호우에는 ‘대기의 강’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대기의 강’은 다량의 수증기가 지나는 일종의 통로인데요. 좁고 길게 형성되는 ‘대기의 강’ 아래 지역엔 많은 양의 비가 쏟아집니다.
우리나라에도 14일부터 서해를 건너면서 뚜렷해진 구름 떼가 좁고 긴 띠를 이루면서 상공으로 흘러들어왔는데요. 이후 충남, 전북 등에는 한 달이 넘는 평년 장마철의 전체 강수량을 훌쩍 뛰어넘는 많은 비가 쏟아졌습니다.
2020년 여름 아열대 지방에서 한반도까지 이어진 ‘대기의 강’은 관측 사상 가장 긴 54일간의 장마를 불렀는데요. 당시 비가 누적되면서 섬진강이 범람했고, 40여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지난해 8월 서울 반지하 참사를 초래한 집중호우 역시 ‘대기의 강’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도 ‘대기의 강’ 영향으로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지난해 12월 말부터 올해 1월까지 미국 서부에는 기록적인 물폭탄이 쏟아졌는데요. 미국 국립기상청(NMS)에 따르면 당시 캘리포니아 전역에 내린 비는 22㎝로 집계됐습니다. 3주에 걸쳐 쏟아진 비는 연평균 강우량의 3분의 1 수준이었죠. 일부 지역에선 연 강우량의 절반 이상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불어난 강물에 집과 도로, 자동차가 그대로 잠겼고, 사망자도 속출했습니다. 뉴질랜드에서도 ‘대기의 강’으로 인한 강우량이 예년의 700%를 뛰어넘은 바 있죠.
‘대기의 강’은 한편으로는 가뭄을 부르기도 합니다. 폭이 좁고 긴 형태로 수증기를 수송하는 탓에, ‘대기의 강’이 지나는 지역에서는 폭우가 쏟아지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오히려 건조해질 수도 있죠. 미국 서부에 많은 비가 내릴 때도 비가 오지 않은 곳은 가뭄이 더 악화한 바 있습니다.
문제는 기후 변화로 기온이 상승하면서 ‘대기의 강’ 통로도 점차 커지고 있다는 겁니다. 지구의 기온이 1도 상승하면 대기 중의 수증기가 7% 증가하는데요. 이에 대기의 강이 한 번에 실어 나를 수 있는 수증기 역시 증가하게 됩니다. 특히 우리나라 인근 수증기와 멀리서 온 수증기까지 더해진다면, 예년보다 더 극단적인 폭우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대기의 강’은 내일(18일)까지 이어질 전망입니다. 이에 충청권과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매우 강하고 많은 비가 내릴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외에도 전국적으로 비가 오겠으나, 수도권 북부와 강원 북부는 곳에 따라 빗줄기가 소강상태에 이르는 곳도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충청권과 남부 등 큰비가 더 내릴 것으로 예보되면서 중대본과 기상청은 해당 지역의 경우 추가 재해에 대비해야 한다고 밝혔는데요. 이미 앞서 많은 비가 누적돼 지반이 약해진 만큼, 적은 비가 내리는 지역이더라도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상청은 “최근 많은 비가 내려 지반이 약해진 상태”라며 “많은 비가 내리는 지역뿐만 아니라 적은 비가 내리는 지역도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습니다.
또 댐 수문 개방으로 인한 하천 하류 침수 침수와 안전사고에도 유의해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하수도와 우수관, 배수구 등에서 물이 역류할 가능성도 있어 반지하 주택, 지하 주차장 등 지하공간 이용 시 물이 조금이라도 차오르거나 역류하는 즉시 대피해야 합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호우가 예보되면서 정부는 “과도할 만큼 선제 대응”을 선언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재산은 물론 대규모 인명 피해를 막지 못했죠. 특히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고의 경우 사전 대비 미흡, 재난 관리 감독 미숙 등 총체적인 부실이 낳은 ‘후진국형 인재’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어 보이는데요. 이에 기후 변화의 영향까지 고려한 새로운 호우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장마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만큼, 정부와 지자체 측의 대책에도 전반적인 쇄신이 필요하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