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한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23일을 떠올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고금리로 위태롭던 부동산PF(프로젝트파이낸싱) 시장은 지난해 하반기 레고랜드 사태가 터지면서 부실 우려가 현실화됐다. 증권사들이 말라붙은 유동성으로 힘겨워하자 일요일이던 10월 23일,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은 비상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채권시장안정펀드, 회사채 ·기업어음(CP) 매입 프로그램 한도 확대, 한국증권금융 자금 등 총 50조 원 규모 지원을 단행했다. 증권사들이 겪는 고통을 분담하기 위해 특별 지원책을 마련한 것이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이 공개한 지난해 증권사 부동산PF 성과보수체계 자료에서 고통은 남의 이야기였다. 최악의 실적을 내고도 이들의 주머니에는 두둑한 성과급이 돌아왔다. 지난해 결코 성과급으로 이어질 만큼 우수한 실적을 올리지 못했는데 참 이상한 일이다. 오히려 증권사들은 부동산 PF 위험관리에 실패해 회사에 손실을 입혔다. 매년 사업보고서가 나온 후 증권가에서 도는 ‘회장님보다 많이 받는 연봉킹’이라는 문구에서 보듯, 증권사는 어느 곳보다도 ‘성과주의’를 강조하는 곳이다. 직급이나 연차보다도 역량을 우선시하는 곳이라는 뜻인데, 성과 대신 손해를 보고도 성과급을 챙겼다니 아이러니하다.
지배구조법을 적용받는 22개 증권사를 대상으로 증권사 PF성과보수체계를 점검한 결과 부동산 PF담당 임직원에게 지급한 조정금은 2021년 64억 원에서 지난해 327억 원으로 오히려 411%(263억 원) 증가했다. 조정금은 증권사가 과거 이연지급하기로 한 성과급 중 업무 손실을 이유로 지급하지 않기로 한 보수를 뜻한다. 손실 발생분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지난해 정부로부터 유동성 지원을 받았던 증권사들이 지급한 성과급의 증가 폭은 더 컸다. 3억 원에서 263억 원으로 대폭 늘었다. 증권사들은 정부가 나서 공적자금을 들이붓는 사이 성과급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정부와 전 금융권의 도움으로 위험을 공유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증권사들이 자신들의 이익은 사유화했다는 얘기다.
특히 이들의 실적이 대폭 꺾인 부동산 PF 사업 부문은 높은 레버리지와 연속적인 자금조달 구조 특성 때문에 장기적인 성과와 연동되는 일이 중요하다. 시장 상황이 불안정한 상황에서도 수익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위험관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장기적 성과는 올리지 못했지만, 보수 체계는 단기성과에 몰려있었다. 성과급 전액을 현금 일시불로 지급하는 일도 허다했다. 22개 증권사가 부동산 PF 임직원에게 지급한 지난해 성과보수 중 주식 비중은 3.3%에 불과했다. 지배구조법 적용을 받는 증권사들은 성과급의 40% 이상을 주식 등으로 3년 이상 이연지급해야 한다.
지난해 10월 정부는 유동성 공급이라는 고강도 대책을 내놓으면서도 ‘늦장 대응’이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뒤늦게 시장 안정을 위한 ‘급한 불 끄기’에 나선다는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 정부의 개입이 옳은 결정이었을지는 의문이 든다. 휘청일 때는 손 벌리다가 성과급은 자기들 몫으로만 돌리는 이들의 행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증권사들은 2020년 ELS(주가연계증권) 마진콜 사태 때도 당국의 도움으로 회생한 전례가 있다. 업계가 자초한 위기는 자구책을 마련해서라도 해결했어야 한다. 유동성 호황기에 부동산PF로 큰 수익을 봤다면 이에 대한 책임도 스스로 감내해야 했다. 죽는 소리로 정부 지원받고도 성과급은 챙기는 행태가 반복된다면 진짜 위기가 닥쳤을 때 증권사들에 손 내밀 곳은 아무 데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