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전원일치로 탄핵소추 기각…“중대한 법 위반 없어”
이 장관 직무 복귀…유가족 “국가가 국민 외면…참담하다”
헌법재판소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탄핵심판 청구를 기각했다. 이태원 참사는 어느 하나의 원인이나 특정인에 의해 발생한 게 아니라, 대규모 재난 상황에 대응할 총체적인 시스템 부재가 문제였다는 취지다.
선고 직후 참사 유가족들은 “어떤 책임도 인정하지 않은 행안부 장관에게 (헌재가) 면죄부를 줬다”며 “참담하다”고 규탄했다.
헌재는 25일 헌법재판관 9명 전원일치 의견으로 이 장관에 대한 탄핵심판 청구를 기각했다. 국회가 이 장관의 탄핵 소추안을 의결한 지 167일, 참사 발생 269일 만이다.
당초 핵심 쟁점은 이 장관이 재난 예방조치 의무를 지켰는지, 사후 재난 대응 조치는 적절했는지, 장관으로서 국가공무원법상 성실과 품위 유지 의무를 지켰는지 여부다. 여기에 파면당할 정도의 ‘중대한 위법성’이 입증되느냐가 탄핵을 가를 근거였다.
헌재는 모든 쟁점에 대해 탄핵 사유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다. 헌재는 “이태원 참사 발생 전 미리 재난안전중앙기관을 안 정했다고 해서 위법하다고 볼 순 없고, 용산구청·용산경찰서 등이 사고 위험성을 보고하지 않아 이 장관이 사고 예방을 위한 구체적 요구를 하긴 어렵기 때문에 재난안전법 위반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또 “참사 당시 이 장관이 보고받은 내용만 기초해 재난 대응방안을 결정하기엔 한계가 있었다”며 “재난발생 현황 파악, 관계기관 협력회의 등 초동조치 단계에서 중대본과 중수본이 수행하는 역할 내지 기능이 실질적으로 수행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장관의 발언에 대해서는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 이 장관은 지난해 12월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서 85분이 지나서야 참사 현장에 도착했다는 지적을 받자 “이미 골든타임이 지난 시간이었다”고 말해 뭇매를 맞은 바 있다.
헌재는 “국민의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고,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는지 혹은 객관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것이었는지 의문”이라면서도 “전체 취지를 보면 이 사건의 원인이나 경과를 적극적으로 왜곡했다고 보기는 어렵고, 이 발언이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태원 참사는 어느 하나의 원인이나 특정인에 의해 발생·확대된 것이 아니다”라며 “각 정부기관이 대규모 재난에 대한 통합 대응역량을 기르지 못한 점 등이 총체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므로 규범적 측면에서 그 책임을 피청구인에게 돌리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이 장관의 사후대응은 직무를 성실히 수행한 것으로 보기 어렵고, 평균적 공무원 시각에서 보더라도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면서 별개의견을 냈다. 정정미 재판관 역시 이 장관의 발언을 지적했지만, 품위유지의무 위반만으로 파면에 이를 순 없다고 했다.
직무에 복귀한 이 장관은 가장 먼저 수해 현장을 방문할 예정이다. 그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께 깊은 애도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번 기각결정을 계기로 소모적인 정쟁을 멈추고, 다시는 이러한 아픔을 겪지 않도록 우리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유가족들은 헌재의 기각 결정에 울분을 터뜨렸다. 선고 직후 헌재 밖에서 한 보수단체가 “이태원 참사는 북한과 연루됐다”고 주장하자, 유가족들이 항의하며 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유가족이 실신해 구급차가 출동하기도 했다.
이정민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대표 직무대행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2022년 10월29일 참담했던 심정을 오늘 또 느낄 수밖에 없었다”며 “대한민국 모든 국가의 행정기관들은 159명의 국민을 외면했다. 우리는 이 나라의 국민이 아니냐”고 울먹였다.
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참여연대 공동대표)는 “우리의 안전이 침해됐음에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아무도 법을 말하지 않는 사회가 바로 무법 사회"라며 “대한민국은 사라졌다. 적어도 헌법적으로는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가 됐다”고 주장했다.